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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말문이 막히는 ‘붕괴 사고’,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등록 2021-06-10 19:37수정 2021-06-11 02:39

2년 전 유사한 사고에도 또 ‘안전 불감’
주민 제보 있었지만 구청 소극적 대응
끝장 본다는 각오로 철저히 조사해야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면서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가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연합뉴스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면서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가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연합뉴스

광주광역시의 한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시민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건물이 도로 쪽으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버스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를 덮친 것이다. 사상자는 모두 버스에 있던 승객들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고등학생, 아들 생일날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식당 주인 등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시민들이 창졸간에 화를 입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참변을 당한 시민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후진적인 사고가 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철저히 조사해 사고 원인을 밝히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봐도 ‘안전 불감증’이 부른 인재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차들이 많이 다니는 큰 도로 바로 옆에서 철거 작업을 하면서 도로를 통제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작업자들은 붕괴 직전 건물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자 급하게 작업 현장을 빠져나왔으면서도 차량 통행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잔해가 쏟아질 경우 안전장치 구실을 하기 힘든 가림막만 쳐둔 채 철거를 진행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공사장 바로 옆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도 그대로 두고 철거 작업을 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이 두달 전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제보를 해 감독관청인 광주 동구청으로 민원이 이첩됐으나, 구청은 안전조치 명령 공문만 발송했을 뿐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붕괴 당시 건물이 아래 방향으로 주저앉은 게 아니라 도로 쪽으로 쓰러지듯이 무너진데다 철거 작업 첫날에 사고가 난 것을 볼 때, 철거 과정이나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된다. 철거 현장에는 안전 문제 등을 관리·감독하는 감리자도 없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는 2019년 7월 발생한 서울 잠원동 붕괴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를 덮쳐 차에 타고 있던 4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경찰 조사 결과 철거업체가 공사기일 단축과 비용 등을 이유로 애초 구청에 제출한 작업계획서와 달리 지지대를 적게 설치하는 등 안전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부층부터 철거해야 했음에도 4~5층을 남겨둔 채 1층부터 철거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뼈아픈 경험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불과 2년 만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니 참담할 따름이다. 경찰은 현장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는 물론, 지자체의 건물 철거 허가 과정부터 제도적 미비점에 이르기까지 이번만큼은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이 어이없는 인재로 악몽이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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