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GP)는 비무장지대(DMZ)에 설치된 ‘감시초소’다. 최전방에서 북한군 동태를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지피는 ‘지오피’(GOP)와 용어가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다른 시설이다. 통상 ‘일반전초’로 번역되는 지오피는 지피와 달리 비무장지대 바깥 철책 뒤에서 적의 접근을 경계하고 방어하는 임무를 맡는다. 전면전 상황에서 지피는 전쟁 발발 시간(‘H 아워’) 전 신속하게 후방으로 철수한다. 반면 지오피 병력은 주둔지 근처에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지피를 비무장지대 안에 설치한 건 사실 정전협정 위반이다. 정전협정 후속합의서는 비무장지대 내 무장을 권총과 보총(소총)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 모두 지피를 철책으로 겹겹이 둘러치고 기관총과 크레모아(클레이모어), 박격포 등으로 중무장해 놓고 있다.
지피는 적과 지척인 곳에 고립돼 있기 때문에 근무병들의 심리적·육체적 압박감이 크다. 지피의 실체는 ‘530 지피’ 사건을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의 ‘530 지피’에서 한 병사가 총기를 난사해 동료 8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앞서 1984년 6월에는 강원도 고성 건봉산의 까치봉 지피에서 근무병이 동료 10여명을 살상하고 월북한 사건도 있었다.
비무장지대에 지피가 본격 건설된 것은 1960대 초반부터다. 북한군이 비무장지대에 지피를 설치해 병력을 전진배치하자, 남한도 이에 대응해 지피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남한의 지피는 2000년대 중반까지 80여곳 수준이었으나, 현재 60여곳으로 줄었다. 첨단 감시·정찰장비가 갖춰지면서 지피의 군사 효용이 감소하자 일부 철수한 것이다. 반면 변변한 감시·정찰장비가 없는 북한은 지금도 160여곳이나 운용하고 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지피 철수’를 제안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기상조’라며 거절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군사 안보상 북한의 지피 의존도가 남한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북한이 이후 감시·정찰장비를 보강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이번에 지피 철수를 선뜻 받아들인 건 북한의 양보로 평가할 만하다.
남북은 우선 지피 간 거리가 1㎞ 이내인 22곳(남북 각각 11곳)을 골라 시범 철수에 나섰다. 향후 전면 철수로 이어져 남북 간 항구적인 긴장 완화의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박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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