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정부 ‘망명신청자 신원확인’ 요청에
‘외교결례 방지’ 내세워 손쉽게 ‘오케이’
경찰은 ‘법적 근거 없다’며 정보제공 거부
‘외교결례 방지’ 내세워 손쉽게 ‘오케이’
경찰은 ‘법적 근거 없다’며 정보제공 거부
외교통상부가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들의 국내 ‘지문 정보’를 확인해달라는 영국 정부의 요청을 수용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규정상 민감한 개인 생체정보인 지문은, ‘범죄 수사 또는 사망자의 신원 확인 등’으로 사용 목적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27일 외교부와 경찰, 법제처 등의 말을 종합하면, 영국 정부는 지난 2월께 탈북자라고 주장하며 망명을 신청한 사람들 가운데 ‘이중 망명자’를 걸러내기 위해 이들의 지문을 떠 한국 정부에 한국인 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영국 정부의 요청은, 망명 신청자 가운데 재중동포와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다시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이들을 가려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업무 협조 요청을 받은 경찰은 “탈북자의 신분 확인용으로 지문 정보를 사용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외교부는 지난 6월 “정보 제공 거부는 외교적 결례”라며 부처간 법률 해석 차이를 조정하는 법제처의 ‘법령해석 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고, 심의위는 지난달 1일과 15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이를 외교부에 통보했다.
정보·인권단체들은 외교부가 ‘저자세 외교’로 나쁜 선례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영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같은 이유로 지문 정보 확인 요청을 해온다면 외교부는 다시 이를 받아주겠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 이들은 이들은 20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영국의 망명 신청자는 2만7천여명이다. 심의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도 “자국민의 지문과 ‘일치한다’ 또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확인해 주는 것 자체가 개인정보 제공에 해당되는 무리한 요구”라며 “이전까지 어느 나라도 망명 신청자의 신원을 확인한다며 다른 나라에 지문 확인을 요구하고, 또 이를 받아들인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외교는 상호적인 것인데 만약 우리 정부가 영국에 같은 요청을 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겠느냐”며 “전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갖고 있는 독특한 우리 현실에서 외교부의 행태는 자국민의 정보인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행정편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정부간 협의를 통해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정보 제공 방식을 놓고 다른 부처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길윤형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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