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감사원장 사퇴 등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로 꼽히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6개월 남긴 최 원장이 향후 대선 가도에 뛰어들 경우 그는 임기를 채우지 않고 정치로 직행하는 첫 감사원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시간 만에 최 원장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어 아쉬움과 유감을 표명했다”고 청와대 박경미 대변인이 전했다.
최 원장은 28일 오전 감사원으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감사원장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임명권자, 감사원 구성원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취임한 최 원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끝난다. 최 원장은 또한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날 최 원장은 대선 출마나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대해선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다’라며 말을 삼갔지만, 정치권에선 그의 등판은 시점의 문제인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문 대통령 “최재형,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 만들어”
정치권에 입문하려 중도사퇴한 ‘1호 감사원장 최재형’은 감사원의 독립성·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문 대통령이 최 원장의 사의 표명 당일 의원면직안을 재가하면서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것으로, 최 원장이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비판한 것은 이번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감사원장이 정치권에 입문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회창·김황식 전 원장 등은 모두 국무총리를 거치며 유예기간을 뒀다. 감사원이 지닌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살핀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재형 원장이 스스로 중도사퇴한 것은 전대미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최 원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임기 보장을 스스로 깼음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23대 황찬현 감사원장의 경우 박근혜 정부때 임명되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임기를 보장했었다”고도 덧붙였다.
최 원장이 월성 원전 경제성 감사, 김오수 감사위원 선임 등을 놓고 문재인 정부와 겪은 불화가 정치 입문의 명분으로 거론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더욱 더 정치권과 거리를 둬야 했다는 지적이 많다.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는 감사원법 2조를 앞세우며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결과적으로 보수 야권 내 지지 기반을 마련한 행보가 됐기 때문이다.
감사원 내부서도 “실망”…송영길 “내로남불의 결정판”
최 원장 사퇴설에 ‘설마’하며 반신반의하던 감사원 내부에서는 최 원장이 결국 자리를 던지고 나가자 “실망스럽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소신 있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절대 안 했던 분이어서 (이번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선 출마 선언까지 한다면 실망할 것 같다”며 “감사원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업무를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지 그것으로 국민한테 인기를 얻어 정치적 발판을 만들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여당은 ‘내로남불의 결정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경북 구미에서 열린 ‘경북도 예산정책협의회’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현직 감사원장이 임기 중 사표를 내고 대통령 선거에, 그것도 야당 후보로 나가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감사원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최 원장이 과거 청와대가 추천한 ‘김오수 감사위원’을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거절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그렇게 거절한 본인이 감사원장 그만두고 야권 대선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말이 맞지 않는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야권에선 초읽기에 들어간 최 원장의 정치권 입문을 반기고 있다. 최근 ‘윤석열 엑스(X)파일’ 등 검증 논란이 확대되면서 ‘윤석열 대체재’로서 그의 몸값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 원장에 대해서 항상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고, 저희와 공존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환영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최 원장은) 아주 맑고 고운 분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으로서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며 추어올렸다.
그러나 최 원장이 당장 국민의힘으로 입당할 것인지를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직행’ 부담감 때문에 당분간 당 밖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정치적 기반이 부족하고 인지도·지지율 면에서 윤 전 총장을 따라잡아야 하는 위치여서 비교적 신속히 입당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전 총장이 입당을 최대한 늦추면서 중도층을 겨냥하려 한다면, 최 원장은 먼저 입당해서 당내 1위 주자 자리를 확보하려는 계산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나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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