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석열 캠프 제공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2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한국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주제로 대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 명예교수는 이 자리에서 ”적폐청산을 내건 개혁 열풍은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관이 복원된 것”이라며 “국정교과서 만들기와 다름없는 역사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윤 전 총장 캠프가 14일 공개한 대담 내용을 보면, 최 교수는 지난 12일 윤 전 총장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나 대통령 권력의 초집중화, 국가주의의 확장, 자유주의 등 한국 민주주의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설명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2시간45분간 이어졌으며, 최 교수가 조언하고 윤 전 총장이 주로 들었다고 한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런 과거 청산 방식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 극단적 양극화를 불러들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분열을 초래함으로써 개혁의 프로젝트가 무엇을 지향하든 성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며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관이 복원됐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국정교과서 만들기’와 다름없는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진보 정치가들을 거의 입만 열면 개혁을 주창하게 만드는 ‘개혁꾼’(reform monger)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한 윤 전 총장 면전에서 쓴소리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이에 대해 “그런 상황이 정권 교체의 역사적 소명과 신념을 강화시킨다”며 “정권교체를 하지 않으면 개악을 ‘개혁’이라고 말하는 ‘개혁꾼’들, 독재·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 부패한 이권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 판치는 나라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는 자유주의적 기반이 허약한 데서 비롯된다”며 “자유주의를 ‘냉전 자유주의’와 구분시키며 현실에 뿌리내려야 한다. 반드시 다원주의를 동반해야 하며 노동·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윤 전 총장 캠프는 전했다. 윤 전 총장은 “승자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자유시장경제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공정한 경제 질서를 헝클어뜨리는 행위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라고 호응했다고 한다.
최 교수와 윤 전 총장은 최근 정치권 화두로 떠오른 개헌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가 일치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의 권력을 하향 분산시켜야 하는 건 맞지만 지금은 개헌의 타이밍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권력 분산 해법을 찾아야 한다. 총리의 위상과 역할만 제대로 구현해도 대통령 권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은 “청와대의 우월적 독점으로 인한 국정 난맥상이 심각하다.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심지어 행정관들이 내각을 지휘하고 있다”며 “헌법 틀 안에 있는 총리 역할이 보장되면 내각 결정권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청와대 권한을 옮길 수 있다는 교수님의 지적에 공감한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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