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행사 전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6월, 거대정당 사상 처음 0선·30대 당대표를 맞이한 국민의힘은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18일로 69일째 당을 이끌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겐 어느새 외연확장·개혁이라는 희망적 열쇳말보다 ‘권력다툼’, ‘자기 정치’라는 꼬리표가 익숙하다. 본격적인 20대 대선 국면에 들어서기도 전, 이 대표가 내홍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공방에 ‘피로감’…승부사적 해결 방식에 우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중심의 야권 경선을 위해 당 바깥의 ‘대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이른 시기에 당으로 품는 데 성공했지만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30일 이 대표가 지방에 내려간 사이 기습적으로 입당했고 경선준비위원회 주최 행사에 불참했다. 당내 ‘이준석-윤석열’ 전선이 형성됐고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 등 윤 전 총장 경쟁주자들이 이 대표에 힘을 실은 반면,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공정한 경선’을 명분으로 이 대표를 공격하며 전선은 확대되는 상황이다. 홍 의원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린 당대표가 들어오니 기존에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저항하고 얕보고 있다”며 당 내부의 이준석 비판론을 ‘나이 탓’으로 돌렸다. 전날 최고위 회의에서 이 대표의 경고에 배현진 최고위원이 “나도 똑같이 잘하라고 경고하겠다”고 응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 때문에 당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 이 대표의 ‘진실공방 본능’이 당내 구성원들의 거부감을 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대표의 발 빠른 메시지 전달 등 대중과의 소통 능력은 그간 장점으로 평가돼왔다. 그러나 민감한 사안을 놓고 내부 협의나 막후 조율 과정을 건너뛰고 에스엔에스를 앞세워 대응하는 모습은 당 내부에서 여러 차례 오해를 샀다. 원 전 지사의 ‘윤석열 정리 발언’ 주장에 대해 이 대표는 17일 밤 페이스북에 녹취록 편집본을 공개해 대응했고 18일 오전엔 원 지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녹음파일을 공개하라’고 요청하자 곧바로 페이스북에서 “그냥 딱합니다”라는 글로 맞받았다. 상대방을 끌어안기보다는 ‘누구 말이 맞는지 끝장을 보자’는 해결 방식이었다.
당내에선 이 대표의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에스엔에스 공세’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대외협력위원장으로 외부 주자를 끌어들이는 데 역할을 한 권영세 의원은 앞서 “대선에서 후보들이 주연이고 당 대표는 조연”이라며 “불필요한 말과 글을 줄이고 공정한 대선 준비 및 관리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성중 의원도 이날 “당대표로서 하는 언행은 무게감이 다르다. 발언들은 최대한 자제하고 중진들과 협의해서 정제된 목소리, 당 공동의 목소리로 나와야 한다”고 공개 조언했다.
“대선 이후 입지 의식, 발광체로 인식시키려 해”
이 대표는 지나친 자신감과 경험 부족으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달 1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합의했다가 당내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국민의당과의 합당 과정에서도 실무협상단보다 앞장서 ‘공세’를 이어갔던 바람에 ‘합의 무산’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통일부·여성가족부 폐지 등 도발적인 발언은 당 내부에서도 우려를 샀고, 올림픽 기간 여성 선수에 대한 백래시와 다름 없는 대변인의 논평을 적극 두둔하며 사회적인 비판에 맞닥뜨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 당선 뒤 2030 세대 유입, 신입당원 증가로 당에 활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뒤 중도층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기보단 당내 분란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며 “엉뚱하게 전선을 내부로 돌리는 모습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우려했다.
‘대선 이후’까지 염두에 둔 그의 ‘발광체 행보’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 대표와 주자는 갈등관계가 아닌 보완관계가 돼야 한다. 갈등의 진원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충돌은 일방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지만, 이 대표가 자신을 발광체로 인식시킴으로써 대선 이후 정치적 입지를 강하게 의식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