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5년 전의 ‘희망’과 ‘환호’는 간데없었다. 6·1 지방선거를 아흐레 남겨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총집결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얼굴엔 비장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 등은 별다른 유세 일정을 잡지 않고 일찌감치 봉하마을로 향했다. 추도식장엔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문희상 전 국회의장, 이해찬 전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 등 야권의 원로들도 두루 참석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와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 등 ‘갈 길 바쁜’ 격전지 광역단체장 후보들도 추도식에 함께했다.
민주당은 대선 뒤 60여일 만에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의 분기점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회동,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으로 ‘컨벤션 효과’가 잦아들면 ‘민주당의 시간’이 올 거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18일 광주에 총출동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데 이어 문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만남도 불발됐다.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시킬 민주당의 유일한 행사가 된 셈이다.
위기감과 기대가 뒤섞인 추도식장 안팎에선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의 유일한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거듭 나왔다. 추도사를 낭독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대선 패배 후에 기운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뉴스도 보기 싫다는 분들도 많다. 그럴수록 더 각성을 해서 민주당을 더 키워나갈 수 있는 힘을 모아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추도식 뒤 기자들과 만나 “노무현 대통령님께 드렸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꿈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겨냥해 노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 수사’의 희생자임을 부각하기도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 출신 대통령이 나오신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보복 수사에 앞장섰던 당시 검찰의 잘못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어진다면 훨씬 더 국민통합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계기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반전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지를 놓고 당내 의견은 엇갈린다. 김민석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봉하마을 추도식이 지나고 나면 경합지에서 맹렬한 추격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해왔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정치적 메시지를 자제한 상황에서 ‘추도식’ 그 자체로 결집의 동력이 되긴 어렵단 평가도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을 잃은 뒤 모인 안타까움은 그간 민주당의 가장 큰 동력이었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동력이 모이길 기대하는 시선들이 있지만 정치적 효과가 예전만큼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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