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녹색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신의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을 하루 앞둔 20일 사실상 ‘부결’ 지침을 내놓자, 일부 의원들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지난 6월 불체포 특권 포기를 약속한 이 대표가 21일 본회의 직전이라도 ‘가결’을 촉구하며 리더십을 보인다면, 방탄단식·방탄정당 프레임 등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본 까닭이다. 이날 지도부 역시 ‘부결’을 권고한 가운데, 자유투표에 나설 의원들 각각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란 내용의 입장문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민주당 의원들의 표정은 갈렸다. 이 대표와 가까운 우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12월 정기국회가 끝나면 비회기 기간을 둬 영장 심사에 응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재명 대표의 생각”이라며 “당대표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의원들을 상대로 체포동의안 표결 가부를 물으며 의원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의 메시지는 의원들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당 일각에선 ‘패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대표가 당내에 가결을 당부하며 ‘방탄정당’의 혐의를 덜어내긴커녕 오명에 쐐기를 박았다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려는 이들도 ‘방탄정당’이라는 비판과 비난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다”며 “여당과의 싸움에서 외통수에 몰렸기 때문에 부결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데, 이 대표의 메시지는 ‘누워서 침 뱉기’ 한 격”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와 의원 등 참석자들이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폭정·검찰독재 저지 총력투쟁대회’에서 내각 총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 때문에 이 대표 메시지가 표결 방향을 놓고 숙고 중인 이들에게 되레 역효과를 낼 거란 관측도 있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이 대표를 향한 동정론이 커진 까닭에 당내에선 부결론이 탄력을 받던 상황에서, 부결 지침 메시지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비이재명계 의원은 “조용히 있으면 그냥 사람들의 마음이 약해지는 국면이었다”며 “확실한 가결표가 현재 20~30표 수준이고 15~20표가 경계선인데, 경계선에 있는 이들에겐 확실히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도 “고민하는 몇몇 의원들에게 가결의 불을 지펴준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의 메시지가 나온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선 체포동의안 표결 방향을 놓고 30여명이 발언에 나서 가결과 부결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의총 뒤 브리핑에서 “최고위원회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부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으나, 이를 당론으로 하진 않고 각각의 의원들이 이런 부분을 고려해 결정해주길 요청했다”며 “지도부의 요청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도 있었고 공감하지 않는 의견도 있었다”고 밝혔다. 지도부의 부결 권고에 일부 의원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취지다.
이 대표와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앞서 구속된 윤관석 무소속 의원, 미국 출장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국민의힘 의원)을 뺀 여야 의원 295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했을 때 체포동의안 가결 정족수는 148석이다. 민주당 의원 다수는 부결에 힘을 싣고 있지만, 당에서 28명가량만 이탈해도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수 있어 지도부도 부결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2월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등으로 국회에 접수된 1차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당시 지도부는 ‘압도적 부결’을 호소했으나, 가결 18표 등 최대 38표가 민주당에서 이탈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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