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당 비례대표 ‘3인3색’] 민주노동당 황선 후보
18대 총선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소수 정당 후보들도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거대 정당 후보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려고 막판까지 치열한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역대 최악의 투표율이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이들 소수정당 후보들은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처럼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소수 정당 비례대표 3인이 총선에 나선 이유와 선거운동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편집자 주>
평양 관광 중 아이 낳아 ‘남북합작’으로 축하받아
사람 따라 다양한 인삿말 건네며 손 따로 입 따로 지난 3일 아침 7시께 황선(35)씨의 집에 들어서니, 겨레(2)는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2005년 남한 국적의 산모가 북한을 방문 중 낳은 ‘통일둥이’로, 남북 사람 모두에게 관심을 받으며 평양국립산모병원에서 태어난 겨레다. 겨레의 엄마이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9번인 황씨는 이른 아침 아이를 남겨놓고 떠나는 게 아쉬운 듯 연신 자고 있는 아이의 볼에 얼굴을 부볐다. 그 옆에서 엄마를 지켜보던 민(3)이는 수줍게 한장의 종이를 건넸다. 종이엔 삐뚤빼뚤한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고양이, 토끼, 민, 겨레.’ 민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글자를 모두 활용해 엄마를 격려하고 싶었나 보다. 엄마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황씨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버스로 당사 출근하며 틈만 나면 “서민정당” 업적 자랑 황 후보는 비례대표답게 이곳 저곳을 누비며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황 후보는 이날 하루만 국방부, 서울시 도봉 지역구, 덕성여대 등을 오가며 부지런히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유권자에게 알렸다. 황 후보의 이력을 보면 그가 통일 문제에 유독 관심을 더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는 98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남쪽 학생대표로 북에 건너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한 차례 옥살이를 하고,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쪽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2001년 한 차례 더 옥살이를 한 전력을 갖고 있다. 황선 후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5년 평양에서 첫 ‘통일둥이’를 낳은 일 때문이다. 황 후보는 당시 유적지 관광을 위해 가족과 함께 평양을 방문 중이었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던 중 갑자기 진통을 시작했고 그렇게 급작스럽게 겨레가 엄마 뱃속을 뛰쳐나왔다. 남한 국적의 산모가 평양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은 남북한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어른들의 부질없는 이념·정치 논쟁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아이의 탄생을 축하했고, 평양 시민들은 겨레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오전 8시, 황 후보는 집을 나서자마자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여의도 당사에서 열릴 아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5분여를 기다리자 저상버스 한 대가 앞에 섰다. 황 후보는 버스에 올라타며 입을 열었다. “민주노동당이 열심히 노력해 결국 저상버스가 도입됐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는 후보들만이 주장할 수 있었던 공약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틈만 나면 민주노동당이 서민을 위한 정당임을 알리고 싶어하는 듯 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평균 재산이 12억입니다. 월세 걱정하며 한달 한달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충을 그들이 알 수 있을까요?” 스무평 남짓한 월셋집에 두 딸과 시부모와 함께 사는 그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방부 앞 항의 시위도 선거운동…모교 찾아가 ‘등록금’ 공약 오전 11시, 황 후보가 국방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3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얼마 안가 풀렸다.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시위 구호가 울려퍼졌다. “선제타격발언 철회하고 남북대결책동 중단하라.” 지난달 26일 이상희 국방부장관 내정자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핵공격 대책에 대해 한 발언이 문제가 돼 남북관계가 급격히 냉랭해진 것을 두고 민주노당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에겐 항의 시위도 선거운동이었다. 오후 1시, 국방부 앞 시위를 마치고 덕성여대로 자리를 옮기는 차 안.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황 후보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9번이다. 당선되긴 어려워보였다. 그런데도 출마한 이유는 뭘까? “당선에 연연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없지요. 민주노동당은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꽃봉오리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 꽃을 피우려고 출마한 겁니다.” 오후 2시, 덕성여대에 도착했다. 북한산의 인수봉이 훤히 보이는 너른 잔디밭엔 수백명의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반대를 주장하며 학생총회를 열고 있었다. 황 후보는 이날 학생총회에서 발언을 하기로 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공약 가운데 하나가 ‘등록금 150만원 상한제’다. 97년 덕성여대 사학비리에 맞서 직접 싸웠던 선배였기 때문일까. 덕성여대 출신인 황 후보를 학생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황 후보의 연설을 지켜보던 김하정(20)씨는 “등록금 문제를 발벗고 나서 해결해주겠다니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냉담한 시민들 반응 보며 아쉬움도 털어놔 오후 4시, 황 후보를 태운 6인승 다마스 봉고차가 덜컹거리며 서울시 도봉구 창동시장에 멈췄다. 장을 보러 온 시민들은 창동시장 일대에 몰려든 각 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을 멀뚱히 쳐다보곤 대부분 금방 지나갔다. 그래도 황 후보는 시민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인삿말은 다양했다. 노점상 주인을 만나면 “떡볶이 노점상 합법화는 민주노동당만 지지합니다”고 말하거나, 아이를 업은 주민을 만나면 “전염병예방법 통과시킨 당이 민주노동당입니다”라고 하는 식이다. 황 후보는 냉담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달라고 하면서 부자정당의 대표를 뽑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요. 이젠 제발 서민 대표를 뽑으면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주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후 6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저녁이 다가오자 창동시장엔 식사를 준비하러 나온 서민들로 다시 활기가 넘쳤다. 황 후보의 발걸음과 명함을 돌리는 손,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홍보하는 입이 다시 바빠진다. 그는 통일이라는 옥동자를 낳을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까? 글 <한겨레> 취재·영상팀 허재현 기자, 영상 조소영 피디 catalunia@hani.co.kr
사람 따라 다양한 인삿말 건네며 손 따로 입 따로 지난 3일 아침 7시께 황선(35)씨의 집에 들어서니, 겨레(2)는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2005년 남한 국적의 산모가 북한을 방문 중 낳은 ‘통일둥이’로, 남북 사람 모두에게 관심을 받으며 평양국립산모병원에서 태어난 겨레다. 겨레의 엄마이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9번인 황씨는 이른 아침 아이를 남겨놓고 떠나는 게 아쉬운 듯 연신 자고 있는 아이의 볼에 얼굴을 부볐다. 그 옆에서 엄마를 지켜보던 민(3)이는 수줍게 한장의 종이를 건넸다. 종이엔 삐뚤빼뚤한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고양이, 토끼, 민, 겨레.’ 민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글자를 모두 활용해 엄마를 격려하고 싶었나 보다. 엄마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황씨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버스로 당사 출근하며 틈만 나면 “서민정당” 업적 자랑 황 후보는 비례대표답게 이곳 저곳을 누비며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황 후보는 이날 하루만 국방부, 서울시 도봉 지역구, 덕성여대 등을 오가며 부지런히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유권자에게 알렸다. 황 후보의 이력을 보면 그가 통일 문제에 유독 관심을 더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는 98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남쪽 학생대표로 북에 건너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한 차례 옥살이를 하고,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쪽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2001년 한 차례 더 옥살이를 한 전력을 갖고 있다. 황선 후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5년 평양에서 첫 ‘통일둥이’를 낳은 일 때문이다. 황 후보는 당시 유적지 관광을 위해 가족과 함께 평양을 방문 중이었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던 중 갑자기 진통을 시작했고 그렇게 급작스럽게 겨레가 엄마 뱃속을 뛰쳐나왔다. 남한 국적의 산모가 평양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은 남북한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어른들의 부질없는 이념·정치 논쟁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아이의 탄생을 축하했고, 평양 시민들은 겨레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오전 8시, 황 후보는 집을 나서자마자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여의도 당사에서 열릴 아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5분여를 기다리자 저상버스 한 대가 앞에 섰다. 황 후보는 버스에 올라타며 입을 열었다. “민주노동당이 열심히 노력해 결국 저상버스가 도입됐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하는 후보들만이 주장할 수 있었던 공약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틈만 나면 민주노동당이 서민을 위한 정당임을 알리고 싶어하는 듯 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평균 재산이 12억입니다. 월세 걱정하며 한달 한달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충을 그들이 알 수 있을까요?” 스무평 남짓한 월셋집에 두 딸과 시부모와 함께 사는 그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방부 앞 항의 시위도 선거운동…모교 찾아가 ‘등록금’ 공약 오전 11시, 황 후보가 국방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3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얼마 안가 풀렸다.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시위 구호가 울려퍼졌다. “선제타격발언 철회하고 남북대결책동 중단하라.” 지난달 26일 이상희 국방부장관 내정자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핵공격 대책에 대해 한 발언이 문제가 돼 남북관계가 급격히 냉랭해진 것을 두고 민주노당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에겐 항의 시위도 선거운동이었다. 오후 1시, 국방부 앞 시위를 마치고 덕성여대로 자리를 옮기는 차 안.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황 후보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9번이다. 당선되긴 어려워보였다. 그런데도 출마한 이유는 뭘까? “당선에 연연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없지요. 민주노동당은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꽃봉오리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 꽃을 피우려고 출마한 겁니다.” 오후 2시, 덕성여대에 도착했다. 북한산의 인수봉이 훤히 보이는 너른 잔디밭엔 수백명의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반대를 주장하며 학생총회를 열고 있었다. 황 후보는 이날 학생총회에서 발언을 하기로 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공약 가운데 하나가 ‘등록금 150만원 상한제’다. 97년 덕성여대 사학비리에 맞서 직접 싸웠던 선배였기 때문일까. 덕성여대 출신인 황 후보를 학생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황 후보의 연설을 지켜보던 김하정(20)씨는 “등록금 문제를 발벗고 나서 해결해주겠다니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냉담한 시민들 반응 보며 아쉬움도 털어놔 오후 4시, 황 후보를 태운 6인승 다마스 봉고차가 덜컹거리며 서울시 도봉구 창동시장에 멈췄다. 장을 보러 온 시민들은 창동시장 일대에 몰려든 각 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을 멀뚱히 쳐다보곤 대부분 금방 지나갔다. 그래도 황 후보는 시민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인삿말은 다양했다. 노점상 주인을 만나면 “떡볶이 노점상 합법화는 민주노동당만 지지합니다”고 말하거나, 아이를 업은 주민을 만나면 “전염병예방법 통과시킨 당이 민주노동당입니다”라고 하는 식이다. 황 후보는 냉담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달라고 하면서 부자정당의 대표를 뽑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요. 이젠 제발 서민 대표를 뽑으면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주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후 6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저녁이 다가오자 창동시장엔 식사를 준비하러 나온 서민들로 다시 활기가 넘쳤다. 황 후보의 발걸음과 명함을 돌리는 손,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홍보하는 입이 다시 바빠진다. 그는 통일이라는 옥동자를 낳을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까? 글 <한겨레> 취재·영상팀 허재현 기자, 영상 조소영 피디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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