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당 비례대표 ‘3인3색’] ② 창조한국당 주디스
18대 총선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소수 정당 후보들도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거대 정당 후보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려고 막판까지 치열한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역대 최악의 투표율이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이들 소수정당 후보들은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처럼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소수 정당 비례대표 3인이 총선에 나선 이유와 선거운동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편집자 주>
필리핀 태생으로 15년 한국생활 차별 고충 토로
감기몸살로 몸 지쳐도 거리유세·단체방문 잰걸음 서른일곱 살의 주디스. 이번 18대 총선에서 가장 이색적인 국회의원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필리핀 태생이지만, 국적은 한국. 국내 정치사상 최초로 총선에 출마한 외국인 출신이면서, 여성이다. 한국생활 15년째. 그동안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를 세번씩 치렀다. “피부 색깔은 달라도 저와 제 아이들은 한국인입니다.” 그에게 이번 선거는 남다르다. 유권자가 아닌 후보자로 나선 첫 선거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이주 외국인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며 몸을 낮췄던 이들이 선거가 끝나면 하나 같이 ‘내가 언제 그랬냐’며 모른 척 했어요.” 그가 창조한국당 비례대표(7번)로 나서게 된 건 이주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정책을 펼 목적이 가장 크다. 그런데 왜 창조한국당 간판일까. 문국현 대표와의 인연이 한몫했다. 주디스는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의 집(서울 구로구)에서 연 다문화 행사 때 문 대표를 처음 만났고, 이를 계기로 대선 때 선거운동을 도왔다. “문 대표가 이주 외국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세요. 문 대표가 김해성 목사께 이주 외국인 비례대표 후보 추천을 부탁했고, 목사님께서 저를 추천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비서관이 건넨 ‘잘못된’ 유세연설 문구 따금하게 지적 총선에 출마한 뒤부터 그의 일과는 180도 달라졌다. 서울 구로동 다문화복지센터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한 일과 대부분을 지원유세로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강행군의 연속이다. 지난 2일에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갑에 출마한 백선기 후보의 지원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감기몸살이 걸렸어요. 병원에 다녀왔어요.” 지난 2일 12시30분. 서울 영등포 창조한국당 당사에서 만난 그는 “몸이 안 좋다”고 했다. 겉으로는 피곤한 기색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그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그가 딛는 걸음걸음이 이주 여성을 위한 것이라는 뿌듯함이 있어서다. 백선기 후보 지원유세를 위해 부천으로 이동하는 차 안. 비서관이 유세 연설문을 그에게 건넸다. “…외국인 여성들은 중개업체를 통해 들어옵니다. 부대비용이 들고…이주여성들의 가정이 한국에서 이혼이나 가정불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유세 연습을 하던 그의 얼굴이 이 문구를 보고 굳어졌다. 그리고선, 따끔하게 지적한다. “정말 (해결이) 안되는 것은 이혼을 해야 합니다. 서로가 안 맞으면 이혼해야 하는데 좀 그렇잖아요.” 비서관의 얼굴이 순간 벌겋게 달아올랐다. “제가 연설문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후보님께서 바꾸셔도 됩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주디스이지만, 여전히 연설은 고행이다. “인터뷰할 때는 기분에 따라 긴장이 안 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유세연설은 하면 할수록 긴장이 많이 됩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오늘은 더 심하네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처음에 언어가 안 되었고…” 유세 말문 열며 ‘주르륵’ 오후 1시30분. 부천시 원미구 역곡역 사거리. 그의 첫 유세가 시작됐다. “한국온 지 15년 반 됐습니다. 두 아이 엄마입니다. 두 아이는 한국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국민입니다. 처음에 언어가 안 되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게 섰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연 그의 눈에 붉게 충혈되더니, 어느샌가 눈물이 흘렀다. 지난 1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간 듯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겨울 때도 많았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그의 첫번째 남편(2004년 사별)을 만나 스물한살 때인 1992년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 ‘사랑 좇아 온 한국행’. 기대가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언어도 안 통하고, 주변환경도 낯설어 정말 힘들었어요. 매일 울었죠. 저를 이방인 취급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는 누구보다 이주 여성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싶어요. 처음에는 국회의원 제안을 받고, 잘 할 수있을까 고민했어요. 잠도 못 잤어요. 유권자들이 한국시민으로 나를 받아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다음날 이주여성 여럿을 만난 뒤 마음을 굳혔어요. ‘해야겠구나. 국회의원’이라고요.” 오후 3시. 거리 유세를 마친 뒤 부천 이주여성 지원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주 여성을 대표하는 만큼 그는 되도록이면, 많은 이주 여성들을 만나려고 한다. 이날도 여러 명의 이주여성들을 만났다. 이들은 주디스에게 실제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풀어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가장 걱정인 듯 했다. 그 역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다. △각 지역마다 다문화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 방과 후 과정으로 다문화학교를 운영하는 것 등이 그가 내건 목표다. 그의 첫 남편은 98년부터 병석에 누웠고, 2004년 생을 마감했다.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는데, 생계까지 꾸리면서 아이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두 아이는 3년 전 필리핀에 보내졌고, 현재 필리핀에 있다. “제 아이들이 한국인 아이들과 피부색이 달라 따돌림 당했어요. 아이들은 운동회 날에도 ‘엄마 오지마’라고 했었죠. 미안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필리핀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응원 메시지 보내주고 구호도 만들어줘 현재 창조한국당 지지율로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선거 결과와 상관 없이 이후에도 ‘명예 국회의원’이 되어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활동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그가 갑자기 핸드폰에 저장된 제자들의 영상메세지를 보여줬다. “기호 5번 창조한국당.”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응원 메시지였다. 유세 구호도 직접 만들어주고, 열렬히 그를 지지해준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현재 남편도 그의 정치활동을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이날 그의 공식 일정은 저녁 6시께 끝났다. 당에서는 저녁까지 유세활동을 해줄 것을 내심 바랐지만, 그의 의사는 확고했다. “몸이 너무너무 아파요. 더 할 수 없어요.” 곧바로 그는 남편이 있는 이태원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모든 이주여성들이 주디스처럼 당당한 한국인이 되는 날이 언제쯤일까. 어찌됐든 그의 존재는 많은 이주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을 것이다. 글 <한겨레> 취재·영상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영상 은지희 피디 eunpd@hani.co.kr
감기몸살로 몸 지쳐도 거리유세·단체방문 잰걸음 서른일곱 살의 주디스. 이번 18대 총선에서 가장 이색적인 국회의원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필리핀 태생이지만, 국적은 한국. 국내 정치사상 최초로 총선에 출마한 외국인 출신이면서, 여성이다. 한국생활 15년째. 그동안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를 세번씩 치렀다. “피부 색깔은 달라도 저와 제 아이들은 한국인입니다.” 그에게 이번 선거는 남다르다. 유권자가 아닌 후보자로 나선 첫 선거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이주 외국인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며 몸을 낮췄던 이들이 선거가 끝나면 하나 같이 ‘내가 언제 그랬냐’며 모른 척 했어요.” 그가 창조한국당 비례대표(7번)로 나서게 된 건 이주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정책을 펼 목적이 가장 크다. 그런데 왜 창조한국당 간판일까. 문국현 대표와의 인연이 한몫했다. 주디스는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의 집(서울 구로구)에서 연 다문화 행사 때 문 대표를 처음 만났고, 이를 계기로 대선 때 선거운동을 도왔다. “문 대표가 이주 외국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세요. 문 대표가 김해성 목사께 이주 외국인 비례대표 후보 추천을 부탁했고, 목사님께서 저를 추천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비서관이 건넨 ‘잘못된’ 유세연설 문구 따금하게 지적 총선에 출마한 뒤부터 그의 일과는 180도 달라졌다. 서울 구로동 다문화복지센터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한 일과 대부분을 지원유세로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강행군의 연속이다. 지난 2일에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갑에 출마한 백선기 후보의 지원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감기몸살이 걸렸어요. 병원에 다녀왔어요.” 지난 2일 12시30분. 서울 영등포 창조한국당 당사에서 만난 그는 “몸이 안 좋다”고 했다. 겉으로는 피곤한 기색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그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그가 딛는 걸음걸음이 이주 여성을 위한 것이라는 뿌듯함이 있어서다. 백선기 후보 지원유세를 위해 부천으로 이동하는 차 안. 비서관이 유세 연설문을 그에게 건넸다. “…외국인 여성들은 중개업체를 통해 들어옵니다. 부대비용이 들고…이주여성들의 가정이 한국에서 이혼이나 가정불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유세 연습을 하던 그의 얼굴이 이 문구를 보고 굳어졌다. 그리고선, 따끔하게 지적한다. “정말 (해결이) 안되는 것은 이혼을 해야 합니다. 서로가 안 맞으면 이혼해야 하는데 좀 그렇잖아요.” 비서관의 얼굴이 순간 벌겋게 달아올랐다. “제가 연설문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후보님께서 바꾸셔도 됩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주디스이지만, 여전히 연설은 고행이다. “인터뷰할 때는 기분에 따라 긴장이 안 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유세연설은 하면 할수록 긴장이 많이 됩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오늘은 더 심하네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처음에 언어가 안 되었고…” 유세 말문 열며 ‘주르륵’ 오후 1시30분. 부천시 원미구 역곡역 사거리. 그의 첫 유세가 시작됐다. “한국온 지 15년 반 됐습니다. 두 아이 엄마입니다. 두 아이는 한국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국민입니다. 처음에 언어가 안 되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게 섰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연 그의 눈에 붉게 충혈되더니, 어느샌가 눈물이 흘렀다. 지난 1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간 듯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겨울 때도 많았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그의 첫번째 남편(2004년 사별)을 만나 스물한살 때인 1992년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 ‘사랑 좇아 온 한국행’. 기대가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언어도 안 통하고, 주변환경도 낯설어 정말 힘들었어요. 매일 울었죠. 저를 이방인 취급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는 누구보다 이주 여성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싶어요. 처음에는 국회의원 제안을 받고, 잘 할 수있을까 고민했어요. 잠도 못 잤어요. 유권자들이 한국시민으로 나를 받아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다음날 이주여성 여럿을 만난 뒤 마음을 굳혔어요. ‘해야겠구나. 국회의원’이라고요.” 오후 3시. 거리 유세를 마친 뒤 부천 이주여성 지원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주 여성을 대표하는 만큼 그는 되도록이면, 많은 이주 여성들을 만나려고 한다. 이날도 여러 명의 이주여성들을 만났다. 이들은 주디스에게 실제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풀어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가장 걱정인 듯 했다. 그 역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다. △각 지역마다 다문화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 방과 후 과정으로 다문화학교를 운영하는 것 등이 그가 내건 목표다. 그의 첫 남편은 98년부터 병석에 누웠고, 2004년 생을 마감했다.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했는데, 생계까지 꾸리면서 아이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두 아이는 3년 전 필리핀에 보내졌고, 현재 필리핀에 있다. “제 아이들이 한국인 아이들과 피부색이 달라 따돌림 당했어요. 아이들은 운동회 날에도 ‘엄마 오지마’라고 했었죠. 미안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필리핀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응원 메시지 보내주고 구호도 만들어줘 현재 창조한국당 지지율로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선거 결과와 상관 없이 이후에도 ‘명예 국회의원’이 되어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활동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그가 갑자기 핸드폰에 저장된 제자들의 영상메세지를 보여줬다. “기호 5번 창조한국당.”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응원 메시지였다. 유세 구호도 직접 만들어주고, 열렬히 그를 지지해준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현재 남편도 그의 정치활동을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이날 그의 공식 일정은 저녁 6시께 끝났다. 당에서는 저녁까지 유세활동을 해줄 것을 내심 바랐지만, 그의 의사는 확고했다. “몸이 너무너무 아파요. 더 할 수 없어요.” 곧바로 그는 남편이 있는 이태원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모든 이주여성들이 주디스처럼 당당한 한국인이 되는 날이 언제쯤일까. 어찌됐든 그의 존재는 많은 이주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을 것이다. 글 <한겨레> 취재·영상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영상 은지희 피디 eu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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