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좀더 진전된 안 내놨어야”
민주 “조건없는 대화 동의·환영”
민주 “조건없는 대화 동의·환영”
김형오 국회의장이 4일 쟁점 법안에 관한 직권상정을 자제할 뜻을 비치면서, 여야 대치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한나라당은 불만 속에 수용 의사를 밝힌 반면, 민주당은 본회의장 앞 농성을 풀기로 결정하며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김 의장의 대화 재개 요구는, 물리력을 동원해도 직권상정이 불가능하다는 ‘궁색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김 의장은 토요일인 3일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을 통해 질서유지권 실행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한나라당 강경파의 질서유지 주장을 무시할 수만은 없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사무처 당직자들을 해산하려 했으나 불가능한 것으로 입증됐다. 의장도 무척 당혹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의원간 충돌은 시도하지 않는다’며 본회의장 정리까지 김 의장에게 떠넘겼다. 결국 김 의장으로선 대화 촉구 말고는 실제 선택할 카드가 마땅찮았던 셈이다.
김 의장은 여야간 협상 타결 가능성에도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야 원내대표단은 지난 2일까지 △방송법 등 미디어 관계법 2월 임시국회 합의처리 노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월 임시국회 협의처리 등에 의견 접근을 이뤘으나 각 당 강경파의 벽에 부닥쳤다. 김 의장은 소수 강경파의 반대를 넘는다면 타협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의장이 이날 회견에서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다”, “각당 의원들은 협상 대표에게 전권을 부여하라”고 강경파를 지목해 경고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김 의장은 또한 한나라당 일각에서 형성되는, 2월로 현안을 넘기자는 흐름에도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 의장은 기자들의 물음에 “여야 합의 없이 임시국회를 또 열면 뭐하냐”고 1월8일 회기 종료 뒤 곧바로 임시국회 소집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이날 “오늘 중 국회의원이 아닌 자는 국회 본청에서 모두 퇴거해 달라. 이것이 마지막 경고”라며, 국회 질서유지권 행사 의지도 거듭 밝혔다. 한 측근은 “의장이 국회 불법점거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며 “지속적으로 국회 경위들을 동원한 해산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경위들은 이날 오전 오후 두 차례 본회의장 앞 민주당 농성장에 와 해산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김 의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면서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차례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박희태 대표는 “국회의장이 제안한 내용의 정신을 받아들여 지금 꽉 막힌 정국을 풀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맨날 소수 야당하고 합의가 안 되면 국회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말 아니냐. 좀더 진전된 안을 내놨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8일까지라는 시한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야당의 불법 폭력 점거 상태가 끝나면 대화하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반면, 민주당은 긍정 평가했다. 정세균 대표는 “김 의장의 기자회견이 (생각보다) 구체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정식 원내 부대표도 “민주당은 김 의장이 밝힌 조건 없는 대화를 환영하고 동의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밤늦게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농성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여야 모두 한발 물러서 숨을 고르며, 다음 싸움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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