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정치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 여러분. ‘친절한 기자’에서 또 만나게 돼 영광이야. 지난번 나의 반말투 기사에 한 독자께서 “불쾌했다”며 연락을 주셨는데, 메일로 배경 설명을 해드렸더니 답장이 없으시네. 그냥 또 반말로 할께.
오늘은 우리나라에 국회의원이 몇이나 필요한가 하는 문제야. 지난달 27일 국회가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 300명을 뽑기로 정했거든. 그 전엔 299명이었으니 1명이 늘어난 거야. 언론에선 난리가 났지. ‘국민이 막은 300석 둑…국회가 허물었다’(조선), ‘여야 밥그릇 늘리기 담합’(중앙), ‘탐욕의 여야, 300의석 금기를 깨다’(동아) 등 다음날 일간지 1면을 보면, 국회의원들의 욕심이 ‘또’ 나라를 망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승질’ 같아선 확 다 잘라버리고 싶지? 선거철에만 굽실거리다 당선되면 입 싹 씻고, 평소엔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쌈박질이나 일삼는 주제에, 꼬박꼬박 억대 연봉 타가고, 손발 같은 보좌진 거느리고, 열차 삯에 차량 기름값까지 받아먹는 꼬락서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지?
그런데 뭔가 이상해.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정말 비용이 줄어들까? 국회는 이미 16대 때 299명에서 273명으로 줄인 적이 있었어. 하지만 집행한 예산은 늘었다고. 15대 국회 예산은 연평균 1731억원이었는데, 16대는 약 30% 늘어난 연평균 2254억원이었어. 1인당 예산은 43%씩 늘어났고 말야.
16대 국회에서 의원 수를 ‘자발적으로’ 줄인 건, 국제통화금융(IMF) 구제금융으로 전 사회가 구조조정을 감수했으니 국회도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었어. 그런데 정작 예산은 늘어난 ‘구조조정’이 효과가 있었을지는 의아스러워. 빼어난 성과를 기록했다면 몰라도,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일 거야.
정치학자들은 국회의원 수가 오히려 늘어야 한다고들 해. ‘국회의원 정수산출을 위한 경험연구’(김도종·김형준, 2003)란 논문을 보면, 인구, 국내총생산(GDP), 정부예산, 공무원 수 등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종합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346명이 적정하다고 결론을 내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계산해보면 더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지.
국회의원이 할 일은 많아. 지역·계층을 대표해서 민의를 대변하고, 행정부와 각종 권력을 견제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법을 만들어야 해. 국회의원을 더 뽑아서 정부의 엉터리사업을 더 잘 막아 나라 예산을 아끼고, 내가 속한 지역·계층에 꼭 필요한 법을 만들어주고, 권력층에 횡행한 비리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럼 왜 의원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해야 돼? 보좌진과 전문가도 늘 테니 정치 관련 전공자의 등용문도 넓어지잖아? 분명 이게 더 좋은 거 아냐? 의원 수 줄이자는 건 포퓰리즘 아닐까?
여기에 대해선, 우리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쩌면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 만들어놓은 ‘정치는 더럽다’는 프레임(틀)에 갇혔다는 거지. 최일선에서 정치를 해야 마땅한 대통령이 의회정치를 ‘정쟁’으로 몰아붙여놓고 슬그머니 막후로 빠지면서, 국회와 정당만 오롯이 국민적 비난을 샀다는 거야. 관료, 재벌, 언론 등 기타 권력은 여기에 동조하거나 방조했겠지.
국회는 충분한 의원 수를 바탕으로 국민을 대표해야 해. 이런 생각은 우리 헌법이 국회의원 수를 “200석 이상”이라고 규정한 데서도 나타나는 거야. 하한선이 정해져 있다는 건 어떤 경우에도 그 아래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거니까. 19대 국회는 어부지리로 1석을 추가로 얻었지만, 국민은 헌정 사상 초유의 300석 시대를 맞게 됐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다음번엔 국민 합의 위에 원칙있는 의석수 확대의 디딤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는 거지.
자, 그럼 또 봐. 안녕.
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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