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19대 총선 당선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뉴스분석] 야권 패배 왜
피부에 와닿는 정책부족
쇄신하는 모습 안 비쳐
공천실패·오만함도 한몫
피부에 와닿는 정책부족
쇄신하는 모습 안 비쳐
공천실패·오만함도 한몫
19대 총선에서 야권은 ‘엠비 심판’을 내세웠고, 여당은 ‘박근혜’를 앞세웠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에는 강하지만, 광범위한 반엠비 정서에다가 야권의 선거 연대까지 고려하면 야권이 쉽게 이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152석을 얻어 단독으로 과반을 달성한 새누리당의 승리였다. 회고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 임기 말의 총선에서는 야당이 유리하다는 정치이론이 깨졌다. 수도권에서 이기는 정당이 제1당을 차지한다는 공식도 빗나갔다.
왜 그럴까? 전문가나 일반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 등 야당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선거의 3대 요소인 비전과 정책, 인물에서 야당이 여당한테 경쟁이 안 됐다는 지적이다.
먼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엠비 심판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이명박근혜’라는 단어는 야권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호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묶어 심판하자는 논리에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미래’가 빠진 과거 심판론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12일 “박근혜 위원장은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을 바꿔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어쨌든 미래를 얘기하고 있는데 야당은 박근혜도 이명박과 같이 심판하자고만 했다”며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비전을 내놓지 않고 남을 비판만 해서는 큰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의 30대 회사원인 장성호씨는 “새누리당도 엠비와 선을 긋고, 공천 물갈이를 했기에 유권자들은 박근혜를 뽑아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민주당이 무조건 이명박과 박근혜를 심판하자고만 떠드는 게 별로였다”고 말했다.
둘째, 정권 심판 뒤에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선거연대에 합의하면서 야권이 내놓은 ‘공동정책 합의문’에는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들이 없었다. 오히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제주 해군기지 폐기 등을 내세워 소모적인 논쟁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야당이 승리했던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 때와 확연히 비교된다. 당시 야당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토목사업과 부자감세 등을 비판하면서 대안으로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등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복지포퓰리즘이라는 여권과 보수층의 공격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을 무기로 버텼다. 결국 새누리당도 야당의 정책 대안에 따라왔다. 서울 잠실동에 사는 30대 초반의 회사원 권혜진씨는 “선거에서는 개인과 당의 공약을 보고 뽑는 면도 있다”며 “민주당에서 내놓은 공약이 정권 심판에만 치우치고 심판 이후의 대책은 안 보였다”고 말했다.
셋째, 인물 혁신에서도 여당에 밀렸다. 공천에서는 새누리당이 민주통합당보다 훨씬 나았다는 평이 중론이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야권이 2012년 정권 탈환을 위해 지난해 후반부터 ‘혁신과 통합’을 추구해 민주당이나 통합진보당이나 통합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인 혁신은 너무 미약했다”며 “내부 쇄신 없이 외부적인 연대로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계파간 나눠먹기로 과거 인물을 대거 공천한 게 대표적이다. 그 결과 서울 강서을 등 전통적으로 야권이 강한 지역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낙선했다. 서울대 대학원생인 조석영(27)씨는 “재벌을 개혁한다고 해놓고 유종일 교수를 떨어뜨리고, 김용민씨도 아무 생각 없이 공천한 것 같다”며 “민주당은 인물이 어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야권이 지난 두번의 선거 승리에 취해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것도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치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쇄신하는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김용민 후보 막말 파문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야당한테 보수층이 화가 나서 결집해 난을 일으킨 것”이라며 “4·11 패배는 오만하게 비친 야당이 국민에게 심판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이충신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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