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토요판/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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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뽑힌 박근혜 의원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 왔던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은 뭔가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사진이 찍혔어. 많은 사람들이 뭐가 못마땅했을까 궁금해했지.
김영삼 쪽은 이런 시각을 부인해. 김기수 비서실장은 “무슨 어린애인가. 평소 표정이다. 특별히 감정을 드러낸 게 아니다”라며 대뜸 “어른을 안 모셔 봤냐”고 묻더군. 나이 들면 표정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야. 자료를 찾아보니 그렇긴 해. 최근 몇달 사이 강창희 국회의장,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다녀갔는데, 매번 사진 속 김영삼은 심드렁할 뿐 좀처럼 웃고 있지 않아.
전문가 의견도 있어. 권장덕 성형외과 전문의(대한성형외과의사회 대외협력이사)는 “나이가 들면 표정근육이나 안면신경이 약화하는데, 본인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설명해. 본인은 표정에 변화를 줬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대로일 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그날 김영삼은 표정뿐만 아니라 말로도 마뜩잖은 기분을 표현한 것 같아. 박근혜에게 “지금 나라가 참 어렵다. 하여튼 그래서 잘하쇼”라고 했거든. ‘잘하쇼’, 그 한마디로 그의 불만을 읽을 수 있다면 너무 과장일까?
김영삼에게 의도가 있었다면, 이유는 역사 때문일 거야. 1960~70년대 김영삼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맞서 싸운 불굴의 민주투사였어. 1969년 김영삼은 박정희의 3선개헌과 장기집권 시도를 맹렬하게 비판했지. 집권 공화당은 그를 ‘좌파’라고 공격했어. 김영삼의 집 앞에서 괴한들이 습격해 승용차 창문에 초산이 든 병을 던진 사건도 있었지. 김영삼은 무사했지만 차량 페인트와 아스팔트가 녹았다고 해. 김영삼 쪽에선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테러’라고 했지.
유신 선포 뒤 ‘선명 야당’을 내건 김영삼의 대여투쟁은 1979년 들어 절정으로 치달았어. 그해 8월 와이에이치(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회사 쪽의 부당한 폐업 철회 등을 요구하며 야당인 신민당 당사로 들어왔어. 당시 52살의 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보호에 나섰지. 경찰이 당사를 감시하는 데 항의하며, 김영삼은 작전을 지휘하던 마포경찰서 보안과장의 따귀를 올려붙이기도 했어. 결국 경찰력이 당사에 투입됐고, 농성하던 노동자들도, 김영삼과 의원들도 끌려나왔지. 이 과정에서 노동자 1명이 추락사했고 김영삼은 사흘 동안 원내 철야농성을 진두지휘해. 다음달인 9월 법원은 김영삼에 대해 당 총재 권한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어.
다시 달이 바뀌어 10월, 김영삼은 미국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고 요구했어. 여권은 ‘반국가적 언동’, ‘국회 위신 및 국회의원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김영삼에 대해 전무후무한 의원직 제명을 의결해. 제명된 김영삼은 가택연금당했고, 부산·마산 지역에서 대학생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어. 바로 부마항쟁이야. 박정희는 그달을 넘기지 못하고 10월26일 목숨을 잃음으로써 권력을 마침내 놓게 돼.
김영삼은 최근까지도 박정희에 대한 비판에 핏대를 세우고 있어. 2011년엔 “18년 장기독재를 한 박정희가 이 나라 군사독재 정권의 원흉”이라고 했고, 2010년엔 “쿠데타 세력이 가장 나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일 나쁘다.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로 괴롭혔던 것을 다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어.
김영삼과 박근혜가 같은 당 사람이긴 해도 별 관계는 없어. 김영삼은 1990년 ‘집권 플랜’의 하나로 노태우-김종필 세력과 손을 잡았고, 이 ‘3당합당’으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을 탄생시켰잖아. 김영삼은 대통령이 됐지만 차남 김현철의 비리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등으로 임기말 지지율은 바닥으로 주저앉았어. 차기 대선후보 이회창은 차별화를 위해 김영삼을 버렸고 ‘새로운 카드’ 박근혜를 영입했지. 박근혜는 15년이 지나 당 대선후보가 됐지만 사실 김영삼과 정치적 동지 관계라 할 순 없어.
이러니 김영삼에겐 박정희의 딸이 대선후보가 되어 찾아온 게 달갑지 않았고, 이를 여과없이 표현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어. 박근혜가 주도한 새누리당의 4·11 총선에서 자기 아들 김현철이 공천에서 떨어진 것도 탐탁지 않은 일이었을 거야. 김영삼은 얼마 전 박근혜를 일컬어 ‘칠푼이’라고도 했지.
박근혜의 부상으로 장준하, 김대중 등 박정희의 ‘정적’들이 다시 주목받는 요즘, 그 반열에 당연히 들어야 할 김영삼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계속 함께했다면 역사는 분명 달랐을 텐데 말이야.
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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