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4일 청와대에서 정부조직법 개편안 국회 처리 지연 문제에 대한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마친 뒤 걸어나가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해 늘 도마에 오르는 비판은 소통 부족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선후보 시절 친박 의원들조차 그의 ‘불통’을 들어 “대통령이 안 돼도 문제, 돼도 문제”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박 대통령은 최근 정치권과의 소통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지도부뿐 아니라 국회 상임위 간사, 상임위별 여당 의원 등을 청와대로 차례로 초청해 대화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의 진언을 외면한 채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대화의 진정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정치권과의 접촉을 넓히는 시도는 나름대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국민과의 소통은 감감무소식이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대중매체인 언론을 통한 대화이다. 국민과 직접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함으로써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국정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들이 까다로운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를 회피하지 않고 자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50여일, 당선된 지는 11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한차례의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선 적이 두차례 있긴 하다. 한번은 당선 다음날 서울 여의도동 새누리당사 기자실에서 연 ‘국민께 드리는 감사의 인사 말씀’을 전할 때였고, 다른 한번은 취임 직후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는 것을 성토한 ‘대국민담화’를 발표(3월4일)할 때였다. 두번 다 준비된 글을 카메라 앞에서 읽기만 했을 뿐 기자들의 질문을 일체 받지 않았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이처럼 외면하는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의 독재정권에서도 유례가 없던 일이다. 언론을 탄압했던 전두환, 박정희, 이승만 정권에서도 대통령 기자회견이 정기적으로 열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 때 연두기자회견 관례를 폐지할 정도로 언론 노출을 꺼렸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선 이후 110여일 동안 간담회까지 포함해 언론인과의 질의응답한 것이 일곱차례였다.
미국 등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들은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전임 대통령에 비해 기자회견이 적다는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조차 집권 1기 4년 동안 79회의 기자회견을 했다. 1년에 약 20번꼴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같은 기간에 89회, 빌 클린턴 대통령 113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42회나 됐다. 미국 대통령은 공식 기자회견 말고도 일상적으로 늘 언론인의 질문에 응대한다. 전용헬기를 타러 집무실에서 백악관 남쪽 뜰로 걸어가는 동안 항상 서너개의 기자 질문을 받고 답한다.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총리도 기자회견 외에 매일 총리 관저에서 5분에서 10분가량 기자들을 만나 현안에 대한 질의를 받고 대답한다. 이를 ‘부라사가리’(밀착취재·매달려 있다는 뜻)라고 부른다.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말은 곧바로 국민에게 가감없이 전달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출입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북핵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취소했다. 간담회는 말 그대로 간략한 대화가 오갈 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본격적인 기자회견이 아니다. 다음달 초 미국 방문길에 오르기 전 간담회를 할 가능성은 있으나 기자회견 계획은 없다.
아흔살이 넘어서까지 백악관을 취재했던 미국의 전설적 언론인 헬렌 토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기에 민주주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대통령에게 일문일답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헬렌 토머스가 박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김종철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