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선거다. 집권당과 제1야당이 사실상 ‘두 개의 룰’로 선거를 치르는 초유의 상황이 빚어질 판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와 관련해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안했던 회담 요청을 청와대가 7일 공식 거부함에 따라 6·4 지방선거가 ‘공천받은 여당 기초후보’ 대 ‘당적 없는 다수의 야권 기초후보’ 구도로 펼쳐질 공산이 커진 탓이다.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실에서 10분간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를 만나 회담 요청 거부 입장을 밝혔다. 박 수석은 “그동안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국정현안을 논의하고자 몇 차례 회동을 제안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공식 회동이 실현되지 않았다”며 “기초공천 폐지 사안은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할 사안이 아니고, 여당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니 여야가 합의를 이뤄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시한으로 정한 이날, 청와대가 ‘회동 거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힘에 따라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혼란스럽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정해영(37)씨는 “이런 선거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정씨는 여당세가 압도적인 이 지역에서 선거 때마다 ‘기호 2번’만 보고 투표해온 야당 지지자다. 그는 “공약집을 본다고 구분이 되겠는가. 애초부터 당선이 어려운 구청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2~3명밖에 안 되는 야당 구의원들은 다 떨어지고, 여당 일색 지역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홀로 무공천’이란 막다른 길을 스스로 선택한 새정치민주연합 내부도 뒤숭숭하다. 이날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새정치연합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입법화 촉구 결의대회’에는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와 소속 의원, 기초선거 후보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안 대표가 “현장 어려움을 잘 안다. 당 대표로서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고 다독였지만, 지도부와 기초 후보자들 사이에 낀 의원들은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이목희 의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세 모녀 사건 등 현안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공천 문제로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야말로 가장 나쁜 상황”이라며 “국민에게 (무공천 방침의 적실성 여부를) 물어야 한다”고 지도부를 압박했다. 여론조사나 당원투표를 통한 ‘무공천 철회론’이다. 반면 ‘신중론’ 쪽의 오영식 의원은 “기초공천 폐지 입법 관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지도부에 힘을 실었다.
반면, 새누리당은 느긋하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문종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새정치연합도 좌고우면하지 말고 우리처럼 좋은 후보자를 국민에게 상향식으로 선보여서 여야가 정정당당하게 국민 선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흐름대로 선거가 치러질 경우 정당간의 유불리를 떠나 그 결과가 유권자인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에서 하루속히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정보 부족에 따른 민의 왜곡’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정치학자인 나도 지역 기초의원은 물론 단체장 후보도 모르는데, 일반 유권자는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외과)는 “야당은 명분에, 여당은 실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여야가 합의해 균등한 조건에서 선거를 치러야 어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참가자들이 승복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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