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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사회적 대타협’ 걷어찬 여권

등록 2015-05-07 21:45수정 2015-05-11 11:48

새누리 지도력 실종 ‘국민연금 50%’ 수용하고도 친박 반발에 무력
청와대 방관자 태도 ‘빨리’ 압박하다 “월권” “알아서” 남 얘기하듯
청 ‘연금 분리처리’ 주장…여야 합의 뒤집기 ‘분란’ 키워
지난 2일 여야 대표가 “사회적 대타협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라며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정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안도 함께 좌절돼, 모처럼 펼쳐지려던 공적연금 논쟁의 장도 유보됐다. 대타협의 선례를 남기는 동시에 더 넓은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갈 기회를 날려버린 이번 사태에서, 여야와 청와대는 지도력, 신뢰, 책임 부족이라는 정치 현실의 생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공무원연금 개편안 우선 처리’라는 분리 처리를 요구하고 나서 분란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당장의 비판에 마주한 쪽은 공무원연금 협상을 주도하고선 당 내부에서 합의안을 관철해내지 못한 새누리당이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연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대표발의를 시작으로 공무원연금 개편을 주도한 끝에, 지난 2일 야당과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편안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때도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이라는 공무원연금 실무기구 합의문 문구가 논란이 됐으나, 본인은 이를 “존중한다”는 표현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이 결정은 곧바로 당 내부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50%’라는 수치를 국회 규칙에 적시하지 않고, 그 내용이 담긴 실무기구 합의문을 국회 규칙에 붙이는 절충안을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마련하기도 했으나, 당내 반발을 넘지 못했다. 특히 반대 의원들은 일부 친박근혜계 의원들로 수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김 대표는 이 ‘소수 강경파’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유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절충안을 표결로 통과시키려 했으나, 당 내분과 청와대와의 갈등을 우려한 김 대표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공무원연금 사태에 대해 철저하게, 뒷전에서 제3자적 태도로 일관한 청와대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년2개월 전 ‘공무원연금 개혁’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틈만 나면 “조속한 처리”를 외치며 새누리당을 압박해왔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가 야당이나 이해당사자인 공무원 노조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한 적도 없고,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지도 않았다. 줄곧 ‘시한 내 처리’라는 말만 반복하며 여당을 압박해왔던 것이다.

게다가 여야가 지난 2일 극적으로 이룬 합의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곧바로 “국민연금까지 합의한 것은 월권”이라고 어깃장을 놓았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합의에 대해서는 “당초 국민이 기대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서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하고, 국민연금 인상 합의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입법부가 마련한 법안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것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 논평’만 하면서 성과는 ‘청와대 몫’, 잘못은 ‘여야 정치권 탓’으로 돌리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50% 명기-9월처리 고집
협상 대신 대결국면 몰아
‘새정치 조급증’ 비판 일어

이런 상황을 악화시킨 건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소통 부재였다. 서로의 ‘진의’가 무엇인지 몰라 혼란이 더 커진 것이다. 합의안 국회 처리를 두고 하루 종일 당내에서 혼선이 빚어졌던 6일에도 청와대는 당 지도부에 “당에서 알아서 하시라”는 모호한 태도만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가 의총에서 ‘청와대도 협상 과정을 다 알고 있는데 왜 뒤늦게 이러냐’며 불만을 표시하자, 청와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원로 인사는 “공무원연금 문제는 청와대가 최고 당사자인데 박 대통령은 남 얘기 하듯 논평만 했다”며 “당사자 의식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7일에도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정치권이 진정 국민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 공무원연금 개혁을 먼저 이루고 그다음에 국민연금은 국민과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면서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분리 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이날 ‘공무원연금 개편과 공적연금 강화는 같이 추진한다’는 5월2일 합의는 유효하다고 확인한 것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요구다.

야당 또한 무책임하다는 비판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 무엇보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막판에 ‘50% 명기’를 너무 고집해 협상 테이블 자체를 흔들어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야당에서는 ‘여당의 행태에 대한 불신이 쌓여 최소한의 ‘안전판’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국민연금 개편은 방향과 목표 수준을 정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해당사자의 참여 속에 이견을 좁혀가야 할 사안이란 점에서 지나치게 ‘대결 국면’으로 몰아갔다는 비판을 사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국민연금 개편을 9월 정기국회에서 마무리한다고 잡은 것도 무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편도 사회적 합의기구를 설치하고 6개월 가까이 시간이 걸렸는데, 국민연금을 9월 초로 처리 시한을 못박은 것은 지나친 과욕을 부린 것 같다”고 했다. 공무원연금 개편 논의 초반, 야당은 청와대와 여당이 ‘4월 국회’로 시한을 못박은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국민연금 문제에선 거꾸로 시한을 못박아 여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 임기 종료를 앞둔 우윤근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특위 위원들의 조급함이 상황을 꼬이게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황준범 이세영 기자 jaybee@hani.co.kr

[관련 영상] 국회가 차린 ‘밥상’ 엎어버린 청와대 / <한겨레TV>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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