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의원(왼쪽)이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이희호 김대중재단이사장에게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한길 의원의 탈당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더민주)과 안철수 의원 등 신당 추진 세력 사이의 야권 주도권 쟁탈전이 본격화하면서 양쪽 모두 ‘김대중 정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야당의 ‘뿌리’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호남 민심을 두고 더민주는 “김대중 정신은 통합과 단결”이라며 탈당파를 공격했고, 신당 추진 세력은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창당 발기인대회(10일)를 앞두고 있는 안철수 의원은 더민주를 탈당한 문병호·유성엽·임내현 의원 등과 4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만난 안 의원은 “김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그리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꼭 이루겠다. 열심히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좀 새 소식을 일구기 위해 수고하는 거 같았어요”, “잘하시겠죠”라고 답했다.
전날 더민주를 탈당한 김한길 의원은 국립현충원 김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제게 정치적 아버지 같은 분이다.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 늘 김대중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자문하고는 한다”며 “제 선택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 김 전 대통령 앞에서 묵념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5일엔 광주를 찾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다. 안·김 두 의원을 비롯한 탈당 의원들이 일제히 ‘김대중 정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호남 지지율을 더 끌어올려 신당 추진 명분과 동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김한길 의원은 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당을 떠나겠다고 하는 분들이 이미 교섭단체를 구성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박영선 의원을 자주 만난다. 고민이 깊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안철수 신당 합류 여부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이뤄가고 있다”며 사실상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맞서 더민주는 “김대중 정신은 통합”이라며 김한길 의원 등을 공개 비판했다. 김 의원 등 이미 탈당한 인사들은 물론 탈당을 고민 중인 의원들을 ‘분열세력’으로 규정하며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후의 순간까지도 야권이 절대 분열하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힘을 합쳐서 통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김대중 대통령님의 유언과 같은 말씀을,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우리 당의 모든 당원들과 원로 어르신들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야권이 분열해 나가는 모습을 김대중 대통령께서 살아 목도하셨다면 통곡할 일이라 확신하고 있다”고 ‘탈당파’를 겨냥했다. 추미애 최고위원도 “책임은 남한테 떠넘기고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면책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의 요체는 약속과 책임이라고 생각된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그렇게 배웠다”고 목청을 높이며 김한길 의원 등 탈당파를 비판했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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