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 내 ‘교통정리’의 최종 윤곽은 이르면 다음주쯤 드러날 걸로 보인다. 설령 친박 패권이 연장되더라도 비박계의 활동 공간은 오히려 넓어질 수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누가 친박계 당대표 후보로 정리될 것인가’다. 최경환 의원에게 모아졌던 초점이 그의 불출마 선언 뒤 서청원 의원에게로 이동했다. 서 의원의 ‘결단’ 시점이 늦춰지자, 이제는 ‘서 의원이 출마하면 당대표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서 의원이 불출마한다면 그를 대신할 친박계 후보는 누구일까’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전당대회 후보 등록(29일)이 머지않았으므로, 친박 내 ‘교통정리’의 최종 윤곽은 이르면 다음주쯤 드러날 걸로 보인다.
친박 대표 주자가 서청원이 되든, 이정현·이주영·한선교 의원 가운데 한 명으로 정해지든, 청와대와 친박계는 현재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명분과 여론의 열세를 충분히 드러냈다. “부담”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청와대·친박계가 공공연히 ‘최경환 밀기’에 이어 ‘서청원 옹립’ 등 무리수를 시도하는 것은 왜일까. 대답은 어렵지 않다. 지금처럼 대선을 1년5개월 남기고 있던 5년 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상황을 되돌아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2011년에는 한나라당 7·4 전당대회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지금처럼 3년 반쯤 지난 시점이다. 청와대와 주류 친이계는 원희룡 의원을 당대표로 밀었지만, 당권을 거머쥔 자는 중립을 표방하며 비주류인 친박계의 지원사격을 받은 홍준표였다. 또 당시 유일한 친박계 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이 당당히 2위 최고위원에 올랐다. 원희룡은 4위에 그쳤다. ‘친이’에서 ‘친박’으로 권력이 완전히 이동했다. 그해 가을부터는 ‘이명박 대통령 탈당’ 주장이 공개적으로 터져나왔다.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친이계는 대거 숙청됐다.
현재로 돌아와보자. 주류, 비주류의 자리만 바꾸면 된다. 권력의 끝자락을 늘여보려는 청와대와 주류 친박계, 그리고 “친박 당대표가 웬 말이냐”며 일전을 벼르고 있는 비주류 비박계 후보들. 전당대회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청와대와 친박계로서는 이번에 당대표를 비박계에 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바로 5년 전 자신들이 어떻게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5년 전 ‘이명박 탈당’을 말하고 다니던 한 인사는 박근혜 청와대의 핵심 수석비서관으로 일하다 최근 물러났다.) 내부로부터 쏟아질 온갖 수모로부터 박 대통령과 친박계를 막아줄 방어막은 당대표뿐이라고 볼 것이다. 친박계 안에, 유력하면서도 믿을 만한 대선 주자가 부재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전당대회 출마는 각자의 자유다. 다만 청와대·친박계가 누구를 밀더라도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친박 후보가 아무리 ‘화합·통합’을 외친다 해도 전당대회는 계파 대결의 장으로 가게 돼 있다. 친박 후보가 패배하면 정권에 미칠 타격이 상당하다. 그런 결과는 친박에 대한 사형선고, 곧 타의에 의한 ‘친박 해체’다.
조직력에서 우월한 친박계가 당대표에 당선될 수도 있다. 당원과 일반국민 참여 비율을 70% 대 30%로 정한 룰 아래서 “바깥 민심과 안쪽 민심은 다를 수 있기 때문”(새누리당 관계자)이다. 친박 후보의 승리는 ‘친박 패권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서청원 출마’ 자체를 ‘비상식’으로 받아들이는 비박계는 그의 리더십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당내 반목은 더 심해질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도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나섰고, 다른 대선 주자들도 갈수록 청와대를 겨냥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의원들도 총선 끝나서 공천 눈치 볼 일도 없다. 역설적으로, ‘친박 당대표’ 체제에서 김무성·유승민·나경원·남경필·원희룡·오세 훈 등 비박계의 활동 공간은 넓어질 것이다. 친박 패권이 연장되더라도, 순탄하거나 오래가진 못할 것이란 얘기다.
역사가 보여주는 권력 시계의 바늘 위에서 청와대와 친박은 예외가 되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그 성공 여부가 걸린, 박근혜 정권의 사실상 ‘마지막 내전’이 될 것이다. 친박의 시간은 연장될까.
황준범 정치데스크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