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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이정현의 신화는 계속될까

등록 2016-08-12 20:32수정 2016-08-13 04:2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새누리당 이정현(오른쪽)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새누리당 이정현(오른쪽)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새누리당 전당대회 이튿날 우연찮게 마주한 이정현 대표는 여전히 ‘낮은 자세’였다. 그는 먼저 자리한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테이블 가운데로 모시려 하는 동작보다 빠르게 어느새 귀퉁이 빈 공간을 찾아가 의자에 살포시 앉았다. “이제는 이러지 마시라”며 그를 가운데로 끌어 앉히기까지 짧은 실랑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펄펄 끓었다. 당대표 경선을 치러내느라 체력이 완전소진됐을 법한데도, 듣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지나온 길과 ‘꿈’을 토해냈다. 노인정을 돌며 할머니들과 팔뚝맞기 고스톱을 치고 다닌 일, 버스에 불쑥불쑥 올라 주민들과 깜짝대화를 나눈 일, 컴컴한 새벽 용역사무소 앞에서 조용히 장작불 쬐다가 누군가 “이정현 아녀!” 하면서 난리법석 대화로 이어간 일…. 그는 “이렇게 사람들 속으로 직접 파고들고 다니면 옆 동네까지 금방 소문이 쫙 퍼진다. 작은 ‘신화’들이 만들어지는 거다”라고 했다. 모든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가며, 깨알 같은 수치와 귀에 착착 꽂히는 비유를 동원해, 울부짖듯 꾸짖듯 쏟아내는 모습은 그를 처음 본 10여년 전 당 수석부대변인 시절이나, ‘박근혜 전 대표의 대변인격’ 시절이나, 청와대 수석 시절이나, 당대표가 돼서나 똑같다.

그런데. ‘보수여당 최초의 호남 출신 대표’ ‘무수저·당직자 신화’를 탄생시킨 새누리당은 이정현의 ‘끓는 피’에 비해 차분한 모습이다.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흥분도, 에너지를 모아보자는 열기도,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활기도 잘 전해지지 않는다. 그저 “모신 뒤로 오늘 가장 많이 웃으신 것 같다”의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과 환한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만 겹쳐질 뿐이다. 왜 이런 걸까? 이 질문은, 친박 일색의 일사불란 지도부를 꾸려놓고도 이정현 대표의 앞길이 편치만은 않은 이유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 이정현은 이른바 ‘독박’이다. 친박이지만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 등 당내 주류 친박들과는 거리가 있는, ‘독자적인 친박’으로 꼽힌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애초 주류 친박의 선택지 밖에 있었다. 최경환, 서청원의 잇따른 출마 포기에 이어 이주영과의 잠깐 저울질을 거쳐 막판에 친박의 ‘낙점’을 받았다. 친박이 이정현 대표에게 깃발을 쥐여주고 울타리를 유지한 모양새지만, 주류 친박과 이 대표가 ‘뜨거운 하나’가 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둘째, 비박계는 비박계대로 이 대표에 대한 냉소에 빠져, 그에게 흔쾌히 힘을 보태주겠다는 분위기일 수가 없다. 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정현이 대표가 되면 당이 청와대 부속실화할 것”이라던 비박계의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다. 셋째, ‘여소야대’ 국회를 오로지 이정현의 뚝심으로 뛰어넘을 수도 없다. 이 대표는 정기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노동관계법 등을 꼭 처리하려 하겠지만 “당정청 한 몸”의 힘으로만 밀어붙일 수는 없다. 넷째, 올 하반기부터 대선 후보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관심과 권력은 이 대표보다 차기 주자들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가 선호하는 반기문이 됐든, 비박계의 김무성·유승민·남경필 등이 됐든, 힘은 그쪽으로 쏠리게 돼 있다.

이런 조건들을 헤쳐나갈 해법은 이 대표 본인이 쥐고 있다. 박 대통령과도, 일반 민심과도 가깝다는 그는 양자가 엇갈려 나갈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이정현을 아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야 뻔하지 않냐”는 답이 온다. 이 대표는 ‘친박 오더’만으로 당선된 게 아니라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 변화에 대한 열망, 진정성에 대한 인정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는 점을 스스로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 점은 당내 계파를 불문하고 공감하는 대목이다. ‘독박’ 이정현이 ‘독자적인 친박’을 넘어 ‘독립한 친박’, ‘홀로 선 친박’이 돼야 그의 신화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황준범 정치데스크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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