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2004년 전례로 전망한 박근혜 탄핵 쟁점 총정리
‘퇴진’을 포함한 결정권을 국회에 넘긴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이미 궤도에 오른 ‘탄핵 열차’를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비주류의 결정에 따라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가 9일로 늦춰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국회 표결을 거치고 나면 온나라의 눈과 귀는 헌법재판소로 쏠릴 수밖에 없다. 심판의 핵심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의 행위가 그를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안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고, 헌재가 어떤 선택을 할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심판 과정에서 벌어질 논란과 쟁점을 미리 살펴볼 순 있다. 12년8개월을 거슬러 노무현 탄핵심판을 살펴보는 까닭이다. 2004년 탄핵재판 당시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냈던 전종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학생들과 이번 탄핵심판 쟁점을 미리 짚어보기 위해 12년 전 사용했던 업무수첩을 다시 살펴봤다”면서 “2004년엔 대통령 탄핵심판이 처음이라 내부 혼선이 있었지만, 이번엔 전례가 있어 쟁점 자체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탄핵심판 얼마나 걸릴까?
#2004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3월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헌재의 최종 선고일이 5월14일이었으니, 탄핵심판에 두 달 남짓인 63일이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처음 거론한 이는 당시 조순형 민주당 대표였다. 그는 그해 1월5일 당 중앙상임위원회에서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고 첫 포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66일 만에 탄핵소추안 국회를 통과했다.
#2016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이후 처음 박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이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다. 그는 <한겨레> 1면에 최순실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했던 9월20일 당 의원총회에서 “이 모든 정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것으로 탄핵소추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국회가 12월2일 탄핵안을 처리한다면, 첫 탄핵 언급에서 탄핵안 통과까지 72일이 흘렀다는 계산이 나온다.
헌재의 탄핵심판 기간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문가 중엔 “2004년과 비슷한 기간이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관계를 다툴 부분이 늘어나 기간이 더 필요해진 반면, 2004년 전례가 있어 진행 자체는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헌법재판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헌재가 국정 공백 장기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2004년 두 달 걸렸던 선례가 있어 그 기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4년 헌재가 심판 절차와 변론 진행 기준 등을 만들어 놓은 데다, ‘탄핵의 중대한 사유라고 볼 수 있는 범위’ 등 핵심 쟁점들을 이미 정리해두었다는 점도 현 재판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목이다.
탄핵심판 시작되면 대통령 사퇴 불가?
#2004
3월1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재적 271명 가운데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소속 195명의 의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가결됐다. 가결정족수인 181표보다 12표나 많았다. 동시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고, 고건 총리가 직무대행을 맡았다. 소추안은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을 하게 될 국회 소추위원(김기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헌법재판소에 제출됐고, 헌재는 접수와 동시에 전자배당을 통해 주선회 재판관에게 사건의 주심을 맡겼다. 주심은 재판관 전체 회의인 평의를 주재하고 공개변론을 진행하는 등 전체 심판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2016
탄핵심판의 시작과 직무정지, 주심 선정 등은 이전과 다를 게 없다. 다만 탄핵안 국회 통과와 동시에, 국회법 134조의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둘러싼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라 탄핵심판이 일단 시작되면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가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일부의 해석을 낳고 있다. 전종익 교수는 “대통령 등 선출직은 임명권자가 없으므로, 이 조항은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장관 등에게만 적용되는 조항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탄핵심판 도중에라도 대통령이 사퇴를 선언하면, 국회가 탄핵을 철회하거나, 헌재가 심판을 더 진행할 이유가 없다며 사건 자체를 각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박근혜를 위한 변론에 나설 자 누구?
#2004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안 통과 뒤 문재인 전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곧바로 변호인단 구성에 나서 나흘 뒤 12명의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꾸렸다. 상징성과 실무능력, 각계 대표성 등이 고려됐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문재인 전 수석뿐 아니라 원로 인권변호사(유현석, 한승헌), 법관 출신(이용훈, 박시환), 헌재 출신(하경철, 양삼승), 검찰 출신(이종왕), 여성변호사회 회장(김덕현) 등이 참여했다.
이에 맞서 국회는 김기춘 소추위원을 지원할 `탄핵심판 수행 대리인단' 60명(외부인사 13명, 국회의원 47명)을 구성했다. 대리인단에는 전직 대법관(정기승), 전직 헌법재판관(이시윤, 한병채) 등이 참여했고, 이와 별도로 교수들이 참여하는 탄핵심판 자문위원단(10명)을 별도로 꾸리기도 했다.
#2016
2004년 당시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에 “소추위원은 검사 역할을 하는데, 검사가 대리인을 선임해 변론에 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 쪽 대리인단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에도 대통령과 국회 양쪽 모두 최대한 유능한 대리인단 선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의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소추위원을 맡게 됨에 따라, 민주당이 야권 성향의 변호사들을 대거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을 꾸리는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탄핵 반대 여론이 컸던 2004년엔 고위법관 출신들이 변호인단에 참여할 명분이 충분했지만, 지금은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아 누구라도 대리인으로 나서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탄핵심판과 동시에 특검도 진행되는 만큼, 박 대통령의 변호인 구인난은 더 심해질 수 있다.
관전포인트 ①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소추위원 역할과 탄핵 사유의 입증
#2004
2004년 탄핵심판에서 소추위원 역할을 맡았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소추위원은 일반 형사재판의 검사처럼 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고, 대통령을 직접 신문할 수 있다. 그는 공개변론 내내 “군사독재 시절에도 대통령이 특정 정당 지지 발언을 한 전례가 없다, 독재적 발상”이라며 노 대통령을 혹독하게 몰아세웠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탄핵안 헌재 접수 뒤 실질적으로 열리는 첫 공개변론에 지역구 출마 일정 등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4월2일로 예정된 첫 변론을 앞두고 그는 “2일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지역구의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어서 물리적으로 출석이 어렵다. 헌법상 참정권 행사의 제한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세 차례나 거듭 변론 연기 요청을 해 빈축을 샀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6
학계에선 소추위원의 역할이 결정적이진 않다는 게 중론이다. 소추위원 외에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리인단이 구성되고, 공방의 소재가 될 탄핵소추 사유서가 이미 야당의 충분한 검토를 통해 사전에 작성되는 탓이다. 하지만 이번 심판에선 2004년보다 소추위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수 있다. 그 비밀은 헌재법 40조 ‘헌법재판소 심판절차에 관하여, 탄핵심판의 경우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는 규정에 숨어있다. 법정에서 치열한 사실 공방이 벌어지게 되면,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 준용 규정을 근거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국회 소추위원 쪽에 형사재판에 준하는 엄격한 사실관계 입증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소추위원이 이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재판은 한없이 길어지게 된다. 야당이 이번 심판에서 소추위원을 맡게 된 권성동 국회 법사위원장을 “합리적인 분”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탄핵소추안 작성 과정에서부터 권 위원장의 의견을 들어가며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역할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권 위원장은 지난 22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피소추자가 피소추사실을 전면 부인하면 검찰 공소장에 최순실, 안종범, 재벌 회장들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헌재에 나와 증언을 해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빨라도 4개월에서 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저 나름대로 예상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학계에선 “탄핵심판은 형사처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변론 과정의 절차를 준용한다는 것이지, 형사소송법 수준의 사실 입증을 요구하는 취지는 아니다”라는 반론도 있다. 결국 사실 입증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증인과 증거를 어느 수준에서 판단할 것인지 등은 변론 과정에서 재판부가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엄격한 사실인정 기준을 정하되, 2~3일에 한 번씩 재판관 평의를 여는 집중 심리를 통해 심판 기간을 단축할 가능성도 있다.
관전포인트 ② 무더기 증인 채택 가능성
#2004
김기춘 소추위원을 비롯한 국회 대리인단은 탄핵심판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과 관련된 수많은 증인을 신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 본인의 출석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검사가 공개된 법정에서 유죄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탄핵소추 사유를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애초 증인으로 신청된 24명 중 안희정, 여택수씨 등 4명의 증인 신청만 받아들였고, 대통령의 증인 출석도 최종적으로 기각했다. 윤영철 헌재소장은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대통령 출석이 꼭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당시 법조계에서도 “판단의 문제일 뿐 사실관계 자체를 크게 다툴 일은 아니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2016
이번엔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 사안도 복잡하고 검찰 수사로 박 대통령이 공동정범으로 적시된 혐의도 많아, 공개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투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연출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2004년엔 대통령이 빨리 결론을 내자는 쪽이어서 시간을 끌지 않았지만, 이번엔 박 대통령 변호인단이 재판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혐의 내용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 이를 위한 다수의 증인 출석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헌재 관계자들도 “대통령 쪽에서 증인 신청을 계속하면 피소추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측면에서라도 재판부가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심판의 신속한 진행과 대통령의 방어권 사이에서 재판부의 균형이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출석은 2004년처럼 본인이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받는 데 이어 헌재 재판정까지 직접 나와 최순실씨와 공모 혐의를 적극 부인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전포인트 ③ 박근혜 범죄사실 적힌 수사·재판 기록 열람
#2004
노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검찰의 수사·내사 기록, 공판 기록을 볼 수 있느냐는 커다란 공방의 소재였다. 헌재법 32조는 ‘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하여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이 조항을 ‘(원본)기록을 요구해 수사나 재판을 방해 말라는 취지라서 사본은 가능하다’는 적극적 해석을 했다. 이에 따라 헌재는 법원과 검찰에 노 대통령 측근과 관련된 기록의 사본을 보내달라는 ‘인증등본 송부촉탁’을 했고, 실제로 이 자료들을 전달받았다. 전종익 교수는 “당시 언론엔 공개되지 않았지만, 검찰과 법원에서 두 트럭 분량의 자료를 싣고 왔다”고 기억했다. 다만 검찰은 수사 기록이 아닌 별도의 내사자료 제출은 “대통령과 관련 내사자료가 없다”며 거부했다.
#2016
이번 탄핵심판에서도 최순실, 차은택, 안종범 등 핵심 피의자들의 수사 기록이 탄핵 사유를 입증할 매우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번에도 헌재법 32조를 근거로 검찰과 법원의 자료 제출을 결사적으로 막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2004년 자료를 제출한 전례가 있어 검찰과 법원도 기본적인 수사 기록과 재판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탄핵심판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특별검사에게도 수사 자료 일체를 전달할 예정이어서, 수사 기록 분류 등 내부적인 정리 작업을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전포인트 ④ 특검 수사 결과를 탄핵 사유에 추가?
#2004
당시 김기춘 소추위원은 헌재에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지 사흘 만에 탄핵 사유를 추가하겠다고 밝히고 나서 공방이 벌어졌다. 노 대통령이 탄핵안 국회 통과 하루 전 ‘총선-재신임 연계’ 발언을 한 것도 탄핵 사유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일반 형사범의 추가 기소와 마찬가지로 추가 소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열린우리당은 “탄핵소추 사유를 추가하려면 탄핵소추안과 똑같이 국회의 재의결이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당시 법조계에선 “탄핵 사유를 추가를 위해서는 국회 과반수 발의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탄핵 의결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게 다수설이었다. 결국 김기춘 위원은 총선-재신임 연계 발언을 탄핵 사유에 추가하지 않고 변론을 진행했다.
#2016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제출된 이후 대통령 탄핵을 뒷받침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이를 소추 사유에 추가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2004년보다 이번 심판에서 더 논란이 커질 수 있다. 탄핵심판과 동시에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검찰의 대면조사를 끝까지 거부하고 특검에서 조사를 받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특검의 수사 결과가 검찰의 결론보다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등 아직 국민적 의혹이 큰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이 안 났고, 매일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추가해야 할 탄핵 사유가 매우 중대할 경우 야권과 새누리당 비주류가 법적 시비를 피하기 위해 추가 의결에 나설 수도 있다.
이와 별도로 최근 새누리당 일부에서 제기됐던 ‘심판절차 정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이 헌재법 51조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헌재가 최순실씨 등의 재판 결과를 보기 위해 심판을 중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최씨의 재판과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동일한 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헌재가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를 방치하며 최순실씨의 재판 결과를 기다릴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다.
성향뿐만 아니라 임기까지 ’재판관 변수’
#2004
노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당시 재판관들의 보수 성향에 대한 우려가 존재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 남성 고위법관 위주의 헌재 구성이나, 과거 재판에서 드러난 보수 일색의 판결 등이 회자됐다.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의 견해가 현직 대통령의 운명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결정하는 힘을 지녔기에, 심판이 진행되는 기간 내내 헌법재판관 9명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특별한 조명을 받았고, 과거 그들이 살아왔던 자취나 정치적 성향까지도 국민들의 관심사항이었다. 윤영철 헌재소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개혁적인 쪽에서는 헌재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말하고, 보수적인 쪽에서는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간다고 말한다”며 곤혹스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2016
현재의 헌법재판관 구성도 보수 성향의 재판관이 주류를 이뤘던 2004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와 똑같이 검사 출신이 2명(박한철, 안창호)이고, 진보적 판결 성향을 보였던 재판관(김이수, 이정미)도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야권은 “이번 탄핵은 보수-진보로 갈리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자신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한 속내는 숨기지 못하고 있다.
불안의 원인은 재판관의 성향 문제도 있지만, 2004년과 다르게 재판관 숫자 자체의 위험성 탓이다. 박한철 헌재소장의 임기가 1월31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는 3월14일까지다. 심판 일정상 박 소장의 임기 전에 탄핵심판이 종료되지 않으면 8명 중 6명 이상이 인용(찬성)을 해야 하고, 이 재판관의 임기 뒤에 결정이 나면 7명 중 6명이 인용을 해야 대통령이 파면된다. 후임 재판관을 임명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의견도 있지만,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라서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헌재소장 등을 임명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또 다른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 헌재 안팎에선 박 소장의 임기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이 재판관 임기 전엔 결론이 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재판관 개별의견 전부 공개…결과에 미칠 영향은?
#2004
9인의 헌법재판관들은 4월30일 마지막 결심에 이어 5월14일 선고 때까지 보름 동안 소수의견 공개 여부를 두고 막판까지 팽팽한 논쟁을 벌였다. 결론은 비공개였다. 헌재법(제34조1항)이 평의 비공개를 강제규정으로 명시했고, 소수의견을 공개하도록 한 조항에는 ‘헌법소원’ 등 다른 사건만 명시하고 있어 탄핵심판의 경우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 이면엔 ‘헌재 결정의 안정성’에 대한 고려, 즉 소수의견이 공개될 경우 국론분열이나 재판관 개인에 대한 위협 등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대신 결정문에 소수의견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하지만 이게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결정문을 찬찬히 뜯어 본 상당수 법조인은 ‘소수의견 비공개가 결정문의 변질을 가져온 것 같다’는 지적을 했다. 탄핵소추안 기각이라는 주문의 취지에 맞는 법리구성이 이뤄져야 하는데, 결정문 안에 소수의견을 무리하게 녹여 넣다 보니 논리적 일관성이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관들의 의견은 6대 3 또는 7대 2로 찬반 의견이 갈렸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지금껏 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공개된 바 없다.
#2016
2016년 탄핵심판이 2004년과 달라진 점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소수의견 비공개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2004년 소수의견 비공개 결정이 안팎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까닭에 이듬해인 2005년 헌재법이 개정됐다. 2004년 헌재법 36조는 ‘위헌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 사건에만 재판관 의견 표시 규정이 있었는데, 2005년 개정된 헌재법은 위 3가지 사건을 아예 삭제해, 결과적으로 모든 심판에 재판관의 의견을 표시하도록 했다. 법조계에선 재판관 개인의 선택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민심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지금은 2004년 탄핵 때보다 민심의 한쪽 쏠림이 훨씬 압도적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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