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52) 충남지사가 22일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구태와 낡은 관행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몇달 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불펜투수’에 머물지 않겠다고 밝혔던 그는 이날 “이제 저의 계절이 돌아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9년 김덕룡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첫 발을 들인 안 지사는 1994년 오랜 벗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제안으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산실인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합류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출범에 결정적인 몫을 하며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지만 대선자금 수사로 구속되며 영광의 뒤안길에 섰다. 이날 안 지사가 “언제나 저보다 당이 먼저였다. 당이 감옥에 가라면 갔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당을 지켰다”고 말한 이유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에 당선됨으로써 그는 일약 차세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안 지사는 진영 논리를 앞세우기보다 ‘원칙’과 ‘상식’에 기초한 민주주의자를 자임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문제와 관련해 ‘재협상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을 두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안 지사는 이날 행사에서도 사드와 관련해 “저의 유일한 기준은 5천만 국민이 모여있는 이 국가의 이익뿐”이라며 “다음 정부를 이끌 대통령으로서 지금 무겁게 처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 문제를 두고는 “누구에게나 방어권을 보장하고 수사권은 수사권대로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 (이 문제를 갖고) 제가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고 의심하는 분이 있다면 그 의심은 접어달라”고 말했다.
이처럼 원칙을 강조하는 안 지사의 메시지가 ‘탄핵정국’에선 관심을 모으지 못했지만, ‘안정’과 ‘통합’이 강조되는 대선 국면에선 주목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안 지사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지지율은 아직 낮지만 허수가 아니라 탄탄한 적금이라고 보면 된다. 차차기에 출마할 것이라는 프레임만 깨지면 2월 중에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1월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 안팎까지 오르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제쳤다. 최근 캠프에 합류한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은 “문재인 전 대표보다는 통합의 관점에서 더 낫고, 이재명 성남시장보다는 더 안정적인 대선 주자”라는 말로 안 지사의 강점을 설명했다.
안 지사가 이날 내놓은 국정운영 비전도 ‘통합’에 방점을 찍고 있다. 대표적인 공약은 ‘의회 중심 내각’ 구성 등을 통한 국회와의 협치다. 안 지사는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한 다수당에 총리지명권을 주겠다. 총리는 내각을 통할해 내치에 전념하고,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5천만 국민을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장기적 국정과제에 몰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에 관해 특별히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지 않겠다. 지난 여섯 명의 대통령이 펼친 정책을 이어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 지사는 “노태우 대통령의 토지공개념,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전략과 금융실명제, 김대중 대통령의 아이엠에프(IMF) 극복과 아이티(IT)산업 육성, 노무현 대통령의 혁신경제,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의 ‘과’보다는 ‘공’에 집중해 통합을 이뤄가겠다는 뜻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