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김윤송, 권리모, 김정민 학생이 지난 3월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천막 하나가 세워졌다. 국회로 향하는 도로 옆에 선 야트막한 천막. “나중에요. ‘그 4월에 벚꽃이 참 예뻤지, 그때 18살 선거권도 (국회를) 통과했잖아’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요.” 지난달 초순, 천막에서 삭발 노숙 농성을 하던 청소년은 기자에게 웃음을 실어 얘기했다. 지난 3일 오후, 그는 천막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 천막을 접거든요. 국회가 열려야 뭐라도 할 텐데, 국회가 파행하니까. 답답했죠.”
청소년 3명은 지난 3월22일부터 천막에서 삭발 농성을 해왔다. 또래 청소년들의 지지 방문이 이어졌다. 요구는 세가지였다. 만 19살부터 가능한 현행 선거권(투표할 권리) 나이를 한살 낮춰달라, 6·13 지방선거부터 18살이 투표할 수 있도록 4월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고쳐달라, 유일하게 반대하는 자유한국당도 동참해달라.
그때, 국회 밖 천막보다 서너배 큰 천막이 국회 안에 세워졌다. 삭발 청소년들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드루킹 댓글 추천수 조작 사건 특검’ 등을 주장하며 지난 4월17일 천막 투쟁본부를 설치했다. 그 천막과 함께 4월 국회가 통째로 멈췄다. 한달간 본회의 등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다. 선거법 개정 논의도 뒷전으로 밀렸다. “청소년도 시민”이라는 ‘국회 밖 천막’의 목소리는 담장을 넘어 국회에 가닿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천막’이 그 목소리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기자는 세계가 주목한 ‘직접 민주주의 사례’인 아일랜드 시민의회 회의 현장을 방문했다. 전국에서 무작위로 뽑은 시민 99명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는 헌법 개정, 국가 주요 과제를 논의한 뒤 결정사항을 의회에 권고하는 기구다. 한국의 ‘지체된 청소년 참정권’과 달리, 아일랜드 시민의회에는 18살 시민위원도 포함돼 있었다. 국가의 중요한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세대를 결정 주체로 참여시킨 것이다.
독일은 이미 1970년 헌법을 고쳐 선거연령을 21살에서 18살로 바꿨다.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사회 곳곳에서 과감히 “민주주의를 감행하자”고 주장했고, 의회가 협조하면서 선거권 나이가 낮아졌다. 현재 독일 일부 주의 지방선거(주의회·구의회 선거 등)에선 아예 16살부터 투표권을 준다. 익히 알려졌듯,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19살에야 투표권을 주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다시 우리 사회는 이런 질문 앞에 섰다. 우리는 이대로 또 19살 미만 청소년을 배제하는 ‘19금 선거’를 반복해야 하나. 언제까지 청소년은 헌법이 보장한 정치참여 권리를 제한받는 투명인간이 되어야 할까.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8월, 청소년의 ‘정치적 미성숙’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며 투표 나이를 18살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냈다. 이제 국회, 특히 자유한국당이 ‘정치 참여 확대’란 시대 흐름에 응해야 한다고 청소년들은 요구한다.
현재 정국 대치 상황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낮지만, 여야가 6·13 지방선거부터 18살 투표가 가능하도록 할 기회는 살아 있다. 선관위는 오는 22일부터 지방선거 유권자를 확정하는 ‘선거인명부 작성’을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선거법을 개정하면 약 60만명의 ‘18살 유권자들’을 명단에 새로 올릴 수 있다. 천막 농성 청소년들은 여당도 22일 이전까지 자유한국당을 끝까지 설득하고 이번에 되지 않는다면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여당의 최우선 과제로서 실천해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3일, ‘천막 농성 43일’을 정리한 청소년들은 다른 방법으로 지방선거 참여를 시도한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등과 함께 광역단체장·교육감 후보를 상대로 ‘청소년 모의투표’(온라인 투표 등)를 진행한다. ‘비청소년 시민들’이 학생 교복을 입고 지방선거에서 투표하는 퍼포먼스도 펼친다. 인권 공약을 내놓는 ‘청소년 교육감 0번 후보’ 운동도 전개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신들의 목소리가 “저 장벽 같던 국회 담장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삭발 청소년들은 희망했다.
송호진 정치에디터석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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