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정부가 25일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이라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 정부를 책임졌던 국무총리 역할에 대한 감사 표시”(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라는 게 주된 설명이다.
그가 92년 인생을 사는 동안 국무총리직을 두차례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드리우고 간 현대사의 그림자를 떠나 그를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나 사회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국가에서 그 공적을 표창하기 위하여 수여한다”는 훈장을 두고는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김 전 총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주역이다.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렸고, 공작정치·인권탄압을 자행한 중앙정보부를 세워 초대 부장을 지냈다. 한국 민주주의 ‘암흑기’의 시작이 그에게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공과를 나눌 때 ‘공’으로 주요하게 평가되는 것이 산업화에 대한 기여다. 그는 <김종필 증언록>에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기 전에 먼저 빵을 먹고 자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협상에 나섰던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들여온 일본 자금으로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1962년 남긴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여파는 5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의 강제침탈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하는 ‘통한’을 남기고 있다. 독도 영유권 관련 한-일 갈등과 문화재 강제반출 문제는 물론, 일본의 강제징용과 징병,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 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증언록에서 “자유나 민주주의는 그걸 누릴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것”이라고 썼다.
그는 또 ‘디제이피(DJP) 연합’을 통해 정권교체에 기여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에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충청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캐스팅보터’를 하며 끊임없이 정치생명을 연장했다는 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그에게 문재인 정부는 훈장을 수여했다. 훈장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상훈법 제2조)에게 주고,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상훈법 제12조)에게 건넨다. 김 전 총리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 가운데 어떤 분야에서 뚜렷한 공을 세웠다고 정부가 판단했는지 알 수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3일 조문 뒤 “김 전 총리는 현대사의 오랜 주역이셨기에 정부로서 소홀함 없이 모셔야 할 것”이라고 한 발언에서도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의 공적을 설명하는 조서는 아직 한줄도 쓰이지 않았다. 정부가 훈장을 먼저 건네고, 1개월 안에 공적조서를 작성해 심사위원회, 국무회의 등을 거친 뒤 대통령 재가를 얻어 확정하기로 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별세한 전직 총리 4명에게 무궁화장을 추서했다는 ‘관례’를 들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총리를 지낸 40여명 가운데, 무궁화장을 받은 이는 10명이라고 한다. 행정안전부는 “2010년 이후의 관례”라고 설명했지만, 왜 2010년을 기준으로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26일 현재 3500명이 그의 빈소를 찾아 애도했지만, 한편으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훈장 수여 반대” 청원이 200여건에 이르는 것이 그가 얼마나 논쟁적인 인물인지를 반영한다. 전직 총리의 별세를 애도하며 예우하는 것과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공과에 대한 논의와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굳이 장례 기간에 서둘러 훈장을 수여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집 표어는 ‘나라를 나라답게’다. ‘훈장도 훈장답게’ 그에 걸맞은지 올바른 절차와 평가가 우선이 아닌가.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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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김종필 전 총리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