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닷새 앞둔 27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여야 예결위 간사들이 협의를 하던 중 자유한국당 장제원 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 장 간사, 안상수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간사, 바른미래당 이혜훈 간사.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6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638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회의실.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심사가 시작된 가운데 첫 안건부터 이견이 불거졌다. 농촌 지역 먹거리통합지원센터 관련 예산을 두고 호남 농촌이 지역구인 서삼석(더불어민주당)·정인화(민주평화당) 의원은 원안 통과를 고수했지만 장제원·이장우(자유한국당) 의원은 삭감을 제안했다. “보류합시다. 소소위에 올립시다. 그다음!” 사회를 맡은 안상수 예결위원장(한국당)은 “보류”를 외쳤다. 안건은 결국 소소위로 넘겨졌다.
27일 470조5천억원의 ‘슈퍼 예산’에 대한 국회 심사가 한창인 가운데 소소위 ‘밀실심사’ 관행은 올해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법에 근거를 두고 15명 안팎의 예결위원으로 구성해 심사하는 예결위 예산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와 달리 ‘소소위원회’는 법적 근거 없이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책임자가 모여 비공개로 진행하는 심사를 뜻한다. ‘소위 속의 작은 소위’라는 의미로 부르던 용어가 굳어져 사용되고 있다. 논의 과정이 기자들에게 공개되고 속기록이 남는 소위와 달리 소소위는 기록 없이 ‘깜깜이’로 진행된다. 소소위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원내대표들이 참여하는 이른바 ‘소소소위’에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다당제 체제에서 진행되는 이번 예결위 소위 심사에선 ‘보류’ 또는 ‘소소위’ 언급이 유독 많았다. 농림부 및 관계기관 심사가 진행된 26일, 예산소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9건 중 5건은 소위에서 마무리가 됐지만 4건은 소소위로 넘겨졌다.
소소위에서는 예산의 적절성,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의해 결론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예결위 간사 등 당내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을 늘리거나 감액을 방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소소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의원은 “소소위에서 신규 예산을 ‘생짜로’ 넣을 순 없지만 기존 항목의 금액을 늘릴 순 있다”며 “결국 소소위원 등은 자기 지역구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소소위의 ‘필요성’에 대해 법적 시한(12월2일) 안에 심사를 마쳐야 하는 시급성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독립된 논의의 필요성을 이유로 든다. 여당 예결위의 한 관계자는 “어느 예산이든 깎을 때 관련된 당사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공개적으로 삭감 의견을 밝혔다간 지역과 집단 등 이해 당사자들과 완전히 등을 져야 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며 “소소위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이런 ‘밀실 합의’에 비판적이다. 한 지역구 중진 의원은 “그 예산을 합의를 안 하고 몇 명이 밀실에서 쿵닥쿵닥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위에서 공개적으로 결정해야지 소소위로 넘어가버리면 어떻게 논의되는지도 알 수 없어 속이 탄다”며 “비교섭단체 관심 예산의 경우 소소위 논의에선 아예 배제되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소소위 밀실성과 관련해 안상수 예결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여러 가지 얘기들을 내실 있게 하려면 공개는 부담스럽고, 할 얘길 못 하기도 하니 공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올해 역시 비공개로 진행할 뜻을 밝혔다. 그는 다만 “시간이 된다면 소소위 뒤 소위에서 ‘리뷰’를 통해 일부 수정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27일까지 소위 심사를 마무리한 뒤 28~30일 소소위를 가동할 계획이었지만 ‘4조원 세수 결손’ 문제로 파행을 겪으면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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