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최근 숨진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6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 앞에서 환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을 만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저는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자식들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법을 바꿔야 나라가 바로 세워집니다. 다 알면서 왜 이렇게 뭉그적거리고 있습니까!”
올해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둔 26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심사가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 회의실 앞을 하루 종일 지켰다.
어머니의 절박한 호소는 소용이 없었다. 여야가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인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저녁 3당 간사 회동을 마치고 나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각 당이 입장을 정리해서 내일(27일) 아침 9시에 회의를 속개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김씨는 “맨날 기다리래, 맨날”이라며 허탈해했다. 김씨는 이어 회의장을 나온 환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에게 “힘내세요. 꼭 힘내서 끝까지 저희를 도와줘야 해요. 정말 진심으로 도와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한 의원은 김씨의 손을 꼭 잡았다.
지난 24일에도 소위 회의장 앞에서 법안 처리를 촉구했던 김씨는 이날도 소위 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회의장 밖을 지키며 비공개 회의장에서 나온 의원들이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가장 앞에서 간절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러다 결국 소득 없이 회의가 끝나자 김씨는 기자들에게 “딱 결정을 하지 않고 두루뭉술 넘기며 시간끌기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이날 오후 산안법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김씨는 소위 회의실 앞 복도에서 태안화력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입장을 발표했다. 김씨는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처참히 잃었는데 죽은 아이 앞에서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고 싶다”며 “그러려면 법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태의 시민대책위원장도 “또다시 시간만 끌다가 죽음을 막는 법을 무산시킨다면 유족과 대책위는 직접 눈으로 목격한 국회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행동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산안법 통과를 강하게 요구했다.
환노위 소속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김씨를 찾아 위로하기도 했다. 여야 교섭단체 합의로 고용노동소위에서 배제됐던 이 대표는 눈시울을 붉히며 “저도 죄인이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 수 있게 해주시길 바란다”며 김씨에게 의자에 앉아 소위 회의 결과를 기다리라고 권했다. 하지만 김씨는 “저는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조마조마하고, 답답하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암담하고, 왜 이렇게 애를 먹입니까”라고 반문했다. 함께 온 고 김용균씨의 이모는 “저희는 오늘 어느 당에서, 누가, 왜 이 법을 발목 잡고 있는지 꼭 밝히고 싶다”며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자유한국당 탓에 산안법 처리가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어 “자유한국당이 매달 200명씩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상황을 끝내 외면하고 산안법 개정안을 걷어차려고 한다”며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뒤집는 한국당은 김용균씨 유족과 모든 산업재해 희생자들에게 사과하고 지금 당장 법안 개정에 합의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국회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연설을 이어갔다. 이들은 27일 오전에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산안법의 올해 안 국회 통과를 요구할 예정이다.
김규남 송경화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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