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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헌법불합치 21개 법률 개정않고 방치…‘직무유기’ 국회

등록 2019-11-26 20:57수정 2019-11-27 17:49

화성범인 찾은 1등 공신 ‘DNA법’
국회 방치땐 내년부터 수사 불가
교원노조 설립 근거도 곧 사라져
병역법 대체복무 신설 시급 사안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최근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찾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디엔에이(DNA) 수사가 내년 1월부터는 불가능해질지 모른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8월 디엔에이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지정한 개정 시한(올해 12월31일)이 다가오지만, 개정안은 아직도 상임위원회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개정 시한 넘긴 법률만 5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 개정이 시급하지만 국회에서 방치되고 있는 법률은 디엔에이법만이 아니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해보니,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국회가 개정해야 하는 법률은 21건으로 집계됐다. 이미 개정 시한을 넘겨 효력을 상실한 법률도 5건이나 됐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가 열리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오른 정치·사법개혁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이 계속되는데다, 정기회가 끝나는 즉시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20대 국회가 이대로 손을 놓는다면 법률 8건은 내년 1월1일 자로, 4건은 내년 4월1일 자로 효력을 잃게 된다.

헌재 결정과 동시에 법적 효력이 사라지는 ‘위헌’과 달리 ‘헌법불합치’는 헌재가 지정한 개정 시한까지는 법적 효력이 유지되며 개정 시한까지 국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이튿날부터 효력을 잃는다.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병역법 5조 1항을 고쳐 ‘대체역’을 신설하도록 의결한 것이 이런 ‘위헌 법률 정비’의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개정된 병역법 역시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디엔에이법은 범죄 수사를 위해 구속 피의자나 수형인의 디엔에이 시료 채취 영장을 발부할 때 채취 대상자의 의견 개진이나 불복 절차를 두지 않아 헌법에 위반된다고 헌재가 판단한 경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위헌 요소를 없앤 5건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으나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법률 체계 곳곳에 구멍 생길 판 내년 4월부터는 용의자의 위치정보 추적도 어려워질 수 있다. 지난해 6월 헌재는 송경동 시인 등 5명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수사기관이 기지국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해 수사에 활용하는 ‘기지국 수사’는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내년 3월까지 국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위치정보 자료나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확보해 수사에 활용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교원노조 설립의 근거가 되는 법률도 내년 4월에 효력이 정지될 수 있다. 지난해 8월 헌재는 사립대학 교수의 노동조합 설립을 막은 교원노조법 2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내년 3월31일까지 법을 고치지 않으면 모든 교원의 노조 설립 근거가 사라진다. 현재 국회에는 5건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이 밖에 △세무사·공인회계사 등의 세무사 등록에 대한 근거규정(세무사법 등) △국회·법원·국무총리 공관 100미터 이내 시위 관련 규정(집시법) 등도 국회의 태업이 계속되면 내년 1월1일부터 입법 공백 상태에 들어간다.

임신중절을 하는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낙태죄’ 조항) 등 2건은 개정 시한이 내년 12월31일이다. 내년 6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21대 국회는 7개월 안에 20대 국회가 물려준 숙제를 마쳐야 한다.

입법부 직무유기로 죽어버린 법들 국민투표법 14조 1항은 국회가 개정 시한을 놓쳐 법적 효력이 사라져버린 경우다. 재외국민이더라도 국내 거소 신고가 돼 있어야 투표인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한 이 조항에 대해 헌재는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제약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개정 시한인 2015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법 개정을 마무리짓지 못함에 따라 국민투표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지난해 4월 청와대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준비하면서 국회에 국민투표법을 신속하게 개정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는 2주 뒤인 다음달 10일 마무리된다. 이후 각 당은 본격적인 총선 체제로 돌입하기 때문에 위헌 법률 정비는 21대 국회의 과제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입법부의 존재 이유를 되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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