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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무상급식·아동수당 ‘원조’…20년전 ‘진보정책 명성’ 되찾아야

등록 2020-05-07 04:59수정 2020-05-07 11:55

②정책정당으로 가자

노령연금·선거연령 18살 등
민노당 초기에 대부분 제안돼
정치권에서 점차적으로 실현돼와
일부는 보수정권에서까지 시행
민주당에 정책 실현 선점당하고
새 시대 맞춰 업데이트도 안 돼
코로나 뒤 거대여당 보수화 가능성
“불평등·기후·젠더·노동 이슈 선도
적극적 지지층 일궈내야 설 자리

진보정당 20년간의 정책 성과.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전국민 고용보험제도’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나 휴직수당을 받지 못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하자는 논의가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경제활동인구 2800만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 중 일부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취지다. 이 정책의 저작권자는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다. 2010년 1월 당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현행 고용보험법은 실업급여의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여 사회안전망 구실을 못 하고 있다.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하여 실업자의 최소 생존권을 보장하고,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100만 청년 실업자, 600만 자영업자에게도 고용보험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지난 20년 동안 진보정당의 정책 제안은 꾸준히 현실화됐다. 16대 대선을 치른 2002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제안한 무상급식은 9년이 지난 2011년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차례차례 시행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기초노령연금과 아동수당, 상가임대차 보호법, 선거연령 18살로 하향 역시 시간차를 두고 실현됐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2월13일, <조선일보>는 3면 머리기사의 제목으로 ‘민주·새누리 복지공약, 알고 보니 민노당 것 다 베꼈네’라 달고, 이런 상황을 기사에 담았다. 현실성 없다고 진보정당의 공약을 비판하던 두 정당이 무상 급식·보육·의료, 아동수당, 고교 전면 의무교육 등의 공약을 대거 ‘베꼈다’는 내용이었다.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21대 총선 당선자들이 4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교육워크숍’에서 심 대표가 준비한 노란색 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진교, 이은주, 강은미, 심상정, 장혜영, 류호정 당선자. 연합뉴스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21대 총선 당선자들이 4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교육워크숍’에서 심 대표가 준비한 노란색 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진교, 이은주, 강은미, 심상정, 장혜영, 류호정 당선자. 연합뉴스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부터 당 정책 파트에서 일한 김정진 전 정의정책연구소장은 2004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의 꿈을 처음 이뤘을 때를 “한국 진보정당의 정책 역량이 가장 빛난 시기”로 기억한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첫 원내 진출 당시 시민사회단체에서 많은 정책 인재들이 결합했다. 당시 민주당 쪽으로 가지 않은 시민사회 ‘정책통’의 90% 정도가 민주노동당에 몰려들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절정은 너무 빨리 왔다. 김정진 전 소장은 “2004년 이후 진보정당의 정책은 업데이트되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돌이켰다. 그사이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리버럴 정치세력은 진보정당이 제기한 의제들을 대거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혜택을 보는 정책의 원저작권자가 누구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배진교 당선자는 “최근 정의당이 내놓은 것 가운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진보 의제가 있나? 그게 없으니 정치적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민주당 2중대’란 비판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도 앞으로 1년은 민주당과의 정책적 차별화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전국 단위 큰 선거가 없는 1년이야말로 거대 정당과의 연대·연합에 신경 쓰지 않고 당의 정책 역량을 내실화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본격화할 집권 민주당의 보수화가 진보정당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종민 정의당 부대표는 “민주당은 당분간 안정적 국정 관리에 집중할 것이다. 정의당은 그사이 불평등·기후위기·젠더·노동 등 4가지 이슈를 선도하면서 적극적 지지층을 일궈야 한다”고 했다. 조혜민 정의당 여성본부장도 “거대 여당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체제 갈등적 이슈에 대해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이때 정의당이 다른 대안을 자신 있게 내놓을 만큼 정책 역량을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진 전 소장은 “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위험은 사회화되고 이익은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혁신적 대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한국 진보정당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주체들과 함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대책인 ‘한국형 뉴딜’이 규제 완화 등으로 흘러간다는 우려가 있다. 기후변화와 경제 문제를 동시에 풀기 위한 ‘그린뉴딜’ 같은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나 약자 보호를 위한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정책 대안으로 적극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의당이 주목하는 새로운 정치 주체는 여성과 청년이다. 진보정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조직노동자들이 점차 체제의 기득권층이 돼가는 현실에서 ‘지금, 이곳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집단에 적극적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의장은 “그린뉴딜과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는 21대 국회 정의당의 1호 법안 후보의 하나로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환봉 서영지 황금비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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