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당 안팎의 견해차가 큰 낙태죄 법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당 차원의 교통정리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 논의를 거쳐 이번 정기국회 때 처리하기로 했다. 반면 당내 이견이 크지 않고 정치적 부담도 적은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이해충돌방지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개정안 등은 지도부가 나서 당론 처리를 관철하기로 했다. 17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이 여론 향배와 정치적 득실을 따지며 책임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최근 최고위원 워크숍과 고위 당·정·청 회의 등을 통해 ‘낙태죄 폐지 여부와 관련해 당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는 등 법안별 대응 기조를 정리했다. 지도부 소속의 한 의원은 “낙태죄 폐지 여부에 대해선 당이 앞장서서 이 문제를 적극 다룰 계획은 없다. 소관 상임위가 여러 고민을 수렴한 뒤 처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도부 소속 의원도 “낙태죄 폐지 여부를 당론으로 정할 경우 오히려 자유로운 의견 교환에 방해가 된다.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해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 여부는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이날 낙태죄를 완전히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권 의원의 법안에는 같은 당의 양이원영·유정주·윤미향·이수진(비례)·정춘숙 의원과 류호정·심상정·이은주·장혜영 정의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10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낙태죄 법안과 같은 방식으로 다룰 계획이다. 원내 관계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해관계자가 많아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든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특정 의원의 안을 중심으로 당론을 모아가는 방식은 어렵고, 앞으로도 당론을 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론으로 가이드라인을 내놓게 되면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그러면 법안 처리가 탄력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국회 연구모임 ‘생명안전포럼’의 대표의원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이르면 이달 안에 중대재해기업 처벌을 위한 복수의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에는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사용자에 대한 처벌 강화 △산업안전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공정경제 3법’과 이해충돌방지법, 공수처 설치법 개정안 등은 이미 당론이 모인 만큼 지도부를 중심으로 입법 절차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민주당은 오는 15일 경제단체와 대기업 연구소 관계자들을 불러 ‘공정경제 3법’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지도부가 이미 최대 쟁점인 ‘3%룰’(지배주주 의결권 3% 제한)을 유지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라 큰 폭의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출범과 관련해선 이미 야당 몫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의 추천 시한을 이달 26일로 통보한 상태다. 시한을 넘기면 공수처법을 개정해 야당을 배제한 채 공수처장 후보 추천 절차를 매듭짓고, 11월 안에는 반드시 공수처를 출범시킨다는 방침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이달 안으로 당 정치개혁 티에프(TF) 차원의 단일안을 만들어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김원철 서영지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