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전태일 열사 유가족이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을 마친 뒤 로비에 전시된 전태일 평전과 태일피복 설립 계획서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전태일 열사는 ‘아직 멀었다’ 하시겠지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열사가 꿈꿨던 노동존중사회가 여전히 ‘이상’으로 남아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표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국회의원과 전태삼·태리씨 등을 청와대 본관으로 초청해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식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추서식에서 “오늘 전태일 열사에게 드린 훈장은 ‘노동존중사회’로 가겠다는 정부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다. 50년이 늦은 추서이긴 하지만 우리 정부에서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에게 훈장을 드릴 수 있어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국민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1등급)인 무궁화장을 받게 됐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에 저는 고3이었다.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뜨고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나중에 노동변호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태일 열사가 했던 주장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며 “하루라도 쉬게 해달라는 외침이 주 5일제로, ‘시다공’의 저임금 호소가 최저임금제로 실현됐다. 노동존중사회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발걸음이 더디지만, 우리의 의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서식 이후 환담을 하면서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이 “촛불정부가 노동중심사회를 위해 앞장서주셔서 고맙다”면서도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한 전태일이 지금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는 ‘아직 멀었다’고 하시겠지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노동존중사회로 가야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아까 전태일 열사의 부활을 얘기했는데, 분신 뒤 수없이 많은 전태일이 살아났다. 노동존중사회에 반드시 도달할 것이라는 의지를 갖고 수많은 전태일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전태일재단 쪽에서 제공한 전태일 평전 초판본(원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과 전태일 열사가 1969년 겨울부터 1970년 봄까지 작성한 태일피복 사업계획서 사본이 전시됐다. 문 대통령은 사업계획서를 보며 “아주 모범적으로 기업을 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노동자들한테 충분히 복지를 (제공)하면서도 기업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꼼꼼하게 (써놨다)”라고 말했다. 전태일 평전 설명을 들은 뒤엔 “저도 저 책을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 가족은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리는 50주기 추도식에서 전태일 열사 영전에 훈장을 헌정하고, 이후 전태일기념관에 훈장을 보관·전시하기로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에서 유가족에게 무궁화장 훈장증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전태일 열사의 셋째 동생 전태리씨, 첫째 동생 전태삼씨, 문 대통령, 둘째 동생 전순옥 전 의원. 청와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