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비토(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기립해 항의하고 있는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공수처 연내 출범에 파란불이 켜졌다. 더불어민주당은 20여년간 검찰개혁을 위한 대안으로 꼽혀온 공수처 출범을 위해선 법 개정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의 거센 반발로 정국은 급랭했다.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거부권(비토권) 축소를 핵심으로 한 공수처법 개정안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전날인 9일 공수처법 개정을 반대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했지만 정기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공수처법 개정안은 이날 임시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됐다. 애초 공수처 설치에 비판적이었던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표결에 불참했고, 법 개정에 반대했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기권했다.
이날 통과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애초 ‘7명 가운데 6명 이상’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완화했다. 현재 추천위원 7명 가운데 국민의힘 몫인 2명이 반대해도 공수처장 추천이 이뤄질 수 있게 된 셈이다. 또 정당이 열흘 이내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을 대신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도 완화됐다.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하고 재판·수사·조사 실무 경력 5년 이상’이었던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을 ‘변호사 자격 7년 이상’으로 문턱을 대폭 낮췄다. 기존 자격요건을 유지할 경우 인력 확보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로써 공수처 검사에 민주당이 선호해온 비검찰 출신 변호사를 임명하는 것이 한층 용이해진 셈이다.
본회의 표결 직후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어 “(민주당이) 공수처를 세우기 위해, 의회의 70년 전통도 윤리도 짓이겼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은 ‘폭정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연대’를 꾸려 ‘반문재인’ 연대체를 구축했다.
공수처 출범을 촉구해온 청와대는 반색했다. 이날 오후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기약 없이 공수처 출범이 미뤄져 안타까웠는데 법안 개정으로 신속한 출범 길이 열려 다행이다.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과 특수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의 성역 없는 수사와 사정·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부패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며 국민과의 약속이다”라고 밝혔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공수처장 후보 추천과 임명, 청문회 등 나머지 절차를 신속하고 차질 없이 진행하여 2021년 새해 벽두에는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즉각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재소집해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선정하는 등 공수처 출범에 가속 페달을 밟을 작정이다. 민주당은 연내 공수처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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