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화상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소극적인 더불어민주당을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논의 테이블에 나오라”고 재촉하고 있다. 민주당이 앞장서고 국민의힘이 막아서는 모습을 예상했던 이들로선 당혹감을 느낄만한 상황이다. 보수정당과 리버럴 정당의 ‘태세 역전’은 왜 일어난 것일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2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헌법 체계에 맞게 입법할 수 있도록 논의 테이블에 참여하라”며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의당과 피해자 가족들의 단식 농성이 12일째 이어지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며 “피해자 유족들이 입법을 촉구하면서 이 추운 겨울에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이른 시일 안에 해당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가 열려서 이 문제를 헌법 체계 적합성에 맞게 논의할 수 있도록 논의 테이블에 민주당이 참여하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민주당은 우리가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저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법체계를 정비한다고 했다”고 반박하며 “이번 임시국회가 1월8일까지 열린다. 회기 내에 입법 성과가 있도록 국민의힘은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그는 지난 14일 중대재해법 제정 촉구 농성장을 찾아 “회기 내에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과거 판사 시절부터 산재 기업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민생 스킨십’을 강화하고 사회 약자 권익을 증진하는 법안에 여당보다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월 표방한 ‘약자와의 동행’ 기조와 떼어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내년 4월 재보선 승리를 위해선 중도로의 외연 확장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보수정당은 재벌 편, 대기업 편’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게 시급하다는 전략 기조가 국민의힘 안에서 힘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엔 민주당의 소극적 태도를 부각함으로써 여당 지지층의 균열을 꾀하려는 의도 역시 녹아 있다. 당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김 위원장이 이념·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산업재해 막는 법’이니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고 의원들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노동계 요구와는 거리…선거용 ‘중도 코스프레’?
하지만 노동계로선 중대재해법과 관련한 국민의힘의 태도에 마냥 박수를 치기는 힘들다.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법안은 유가족과 노동계가 요구하는 수준은 물론, 민주당에서 논의 중인 법안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주 원내대표의 이날 아침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 법안 논의를 촉구하면서도 “법률이 과잉입법이 돼서 책임없는 처벌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은 제거돼야 한다. 과잉입법도 있고 책임 원칙에 반하는 규정도 있어서 여러 손 볼 규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가 대표적인 ‘과잉입법’으로 지적한 부분은 민주당이 도입을 논의 중인 ‘인과관계 추정’ 조항과 안전관리·인허가 담당 공무원에 대한 처벌 특례 조항 등이다.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재해 발생의 직접적 원인이 사업주에게 있다고 입증하기 어렵더라도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등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사업주가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등 사건 은폐를 지시한 경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조항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입증해야 한다. 안전관리·인허가 담당 공무원 처벌 특례 조항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주의 의무 위반’의 책임을 물어 담당 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노동계는 이 두 조항 모두 산재 예방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반드시 법안에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두 조항이 ‘과잉 처벌’에 해당한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중대재해법과 관련한 국민의힘의 입장이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 수준이란 비판이 노동계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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