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논의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서 왼쪽부터 정의당 박인숙 부대표, 류호정 의원, 고 이한빛 노동자 아버지 이용관씨,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 강은미 원내대표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그 앞에서 법사위 간사이자 법안심사소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이 취재진에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여야가 30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기준을 ‘사망자 1명 이상’인 경우에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 등’의 범위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행정기관장을 포함시키되 논란이 됐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제외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워낙 첨예한 쟁점이 많아 소위는 5일 다시 회의를 열 예정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이자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전날에 이은 두번째 법안심사소위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처럼 밝혔다. 백 의원은 “(28일 정부가 의견을 모아 제출한 중대재해법) 정부안이 두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에만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도가 됐는데 그렇지 않다”며 “사망 1명인 경우에 적용하는 것으로 (여야) 합의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김용균 사망 사건이라든지, 구의역 참사 사건 (같은 경우도) 모두 중대재해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백 의원은 정부가 ‘법 적용 기준을 사망자 1명 이상으로 할 경우 처벌 수위를 낮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한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장과 행정기관장을 중대재해 책임 범위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정부안도 수정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지자체장과 행정기관장의 경우 기업과 구별해 제외할 합리적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장해서 지자체장 등도 경영자처럼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포함시키지 않기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등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되거나 △사업주가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등 사건 은폐를 지시한 경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는 조항인데, 정부는 “형사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회의에서 이런 범죄의 경우 개별 사건마다 상황 차이가 커서 법원이 개연성을 살펴 처벌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없어도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위헌이라는 의견도 많아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코로나로 어려운데 소상공인 자영업자까지 중범죄자로 규정하나”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심사를 하고 있지만 이견은 계속 돌출하고 있다. 이날 법안소위에선 중대시민재해 규정에 나오는 ‘공중이용시설’ 범위에 카페, 제과점, 음식점, 목욕탕, 노래방 등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포함돼 있는 대목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고 한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법안심사소위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잠재적으로 중범죄자로 규정되고 있다”며 “법 취지에 맞지 않는데 민주당에서 어떤 생각으로 제출했는지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8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법에 대한 각 부처 의견을 모은 의견서 형식의 정부안을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바 있다.
정부안은 기존에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보다 책임 범위와 적용 대상을 대폭 축소해 입법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한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비공개 회동을 갖고 중대재해법 처리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중대재해법을 회기 내 합의 처리하자고 부탁했다”며 “김 위원장은 법 성격상 의원입법보다는 정부입법이 낫고, 정부안을 토대로 의원안을 절충해 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반응이 처리를 돕겠다는 것으로 해석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셈”이라며 “3주째 희생자 가족이 단식 중인데 빨리 끝내시도록 노력하자는 부탁을 드렸고 김 위원장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설명했다.
전날 법안심사소위 회의 때처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 이한빛 피디(PD) 아버지 이용관씨, 그리고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등은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는 회의실을 찾아 신속한 법 심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로 20일째 단식농성중이다. 김미숙씨는 백혜련 의원에게 “1명 사망으로 (기준을 합의) 했다는데 그것으로 인해 (처벌) 하한을 낮출까봐 우려스럽다. 그럼 처벌도 불가능해서 실질적으로 법 취지가 안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용관씨는 “우리는 시급한데, 찬바닥에서 굶어가면서 (농성을) 하는데 의원님들이 5일 쉬고 와서 논의하겠다고 할까봐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저희가 간신히 버티고 있다”며 “(여당은) 국민의힘이 합의를 해줘야 한다고 하고 국민의힘은 여당이 끌고 가면 되지 않냐고 한다. 좀 절실한 논의 모습을 보여달라. 신속히 해야 하는데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슴이 타들어 간다”고 말했다. 김미숙씨는 “정부안이라고 사람 목숨 지킬 수 없는 안을 (정부가) 가지고 나왔다”며 “이것을 철회해달라고 대통령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국민 생명을 안전하게 만드는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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