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단일화 비전발표회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4·7 재보선 후보등록 첫날인 18일에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협상을 타결하지 못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박빙 승부를 벌이는 두 후보가 ‘유선전화 조사’ 포함 여부를 두고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벌이다 ‘후보 등록 마감 전 단일화’의 물리적 시한을 넘긴 것이다. ‘작은 유불리에 집착하다 서울시장직을 여당에 헌납할 것이냐’는 지지층의 우려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두 후보가 자기 주장을 철회하지 않은 데는, 투표용지 인쇄일(29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경선 승리 가능성을 0.1%라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 결렬 선언 3시간만에 협상 재개…15분만에 ‘또’ 결렬
협상 타결을 위한 최후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이날 오전 11시가 되자, 양쪽 실무협상단장인 정양석·이태규 사무총장이 협상장을 나와 “후보 등록 전 단일화 협상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두 후보자간의 합의에 의하면 오늘까지 여론조사를 마치고 내일 단일후보로 등록하도록 약속이 잡혀있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 단일화에 대한 협상과 의지는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조사에서 유선전화 10% 포함 여부를 두고 입장차를 끝까지 좁히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오전 11시11분 ‘여론조사 유선번호 반영 필요성’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협상 결렬이 선언된지 1시간이 조금 넘은 시각인 낮 12시15분, 돌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수정 제안한 여론조사 방식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 (국민의당) 실무협상단은 제안 내용이 불합리하다며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저는 대의를 위해서 수용하겠다”는 긴급 입장문을 냈다. 40분 뒤인 12시55분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환영한다. 이제 협상단은 조속히 협상을 재개하고, 세부방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화답하면서 이날 오후 2시, 실무협상단장은 다시 마주 앉았다. 결렬 3시간만에 오후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협상은 15분만에 허무하게 결렬됐다.
오후 협상 결렬 이유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유선전화 10% 도입 여부’였다. 두 당 실무협상단은 여론조사 업체 한 곳은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다른 한 곳은 여당 후보를 상대로 한 경쟁력을 각각 조사하자는 데엔 합의했다. 하지만 안 후보 쪽은 무선전화 100% 여론조사를 요구했고, 오 후보 쪽은 유선전화 10% 조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오 후보는 무선전화 100% 여론조사 방식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실무협상단은 “유선전화 10%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건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못박았다. 무선전화가 없는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려면 일정 비율의 유선조사 반영이 필수라는 논리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결과도 좋지만 (단일화) 과정에 있어서도 원칙이 중요하다. (무선전화가 없는) 22%의 사각지대 소외계층을 무시할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그분들도 끌어안고 가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무선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만으로 자체 경선을 치러온 국민의힘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이 장년·노년층 등 보수 성향의 응답률을 더 많이 반영하기 위해 무리하게 유선전화 10% 포함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서로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날 수 없을만큼 팽팽한 상황이다. 오 후보 말처럼 양보했다간 우리가 이대로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도 “대놓고 안 후보에게 불리한 룰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나. 제1야당이라고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반발했다.
뒤늦은 제안 불쾌한 오세훈…안철수 “오세훈이 당 눈치보며 말바꾸기”
안 후보가 뒤늦게 오 후보의 제안을 받겠다고 나선 데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장 논점이 됐던 ‘유선전화 10% 포함’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은 바꾸지 않으면서, 말로만 ‘대의를 위한 수용’을 외쳤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단일화 뒤 합당 때부터 안 후보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얕은 수를 쓰는 게 그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 업체 한 곳은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다른 한 곳은 여당 후보를 상대로 한 경쟁력을 각각 조사하자’는 내용에 합의한 것만으로도 대의를 위한 수용이었다며, “오 후보께서 당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바꾸시는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다”고 공격했다. 이어 “오 후보께서도 당에 전권을 요구하셔야 한다. 그래야 후보끼리 담판을 지을 수 있다. 저는 과감하고 대승적으로 담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후보 등록 전 협상이 결렬되면서 두 후보는 각자 후보 등록을 한 뒤 투표용지 인쇄일까지 단일화를 목표로 협상을 이어가게 됐다. 이날 협상이 최종 결렬된 데는 양쪽 모두 단일화 국면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후보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전략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단일화가 불발돼 당장 내일부터 3자 구도의 여론조사가 쏟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조건 거대 양당에게 표가 쏠릴 수 밖에 없다. 안 후보는 구조적으로 3등일 수밖에 없어 협상은 더욱 불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내곡동 땅과 관련해 오 후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해명을 바꾸면서 여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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