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일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지지율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20일 출마를 선언하면서 10명이 나선 6·11 전당대회 대진표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정권교체를 위한 적임자’라고 주장하지만, 각각 경륜과 개혁을 강조하는 등 서로 다른 방법론을 내세우며 세대 간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국회의원 경험이 전혀 없는 원외 30대(이준석)부터 영남의 60대 5선 의원(주호영)까지 다양한 경력의 정치인들이 당권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경륜 강조한 나경원…‘강경보수’ 탈피하려 호남행
나 전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쇄신과 통합을 통한 대선 승리의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성취해 정권교체의 꿈을 이루겠다”며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나 전 의원은 “대선과 곧 이어질 지방선거라는 거친 항해를 이끌 선장인 이번 당대표의 책무는 우리 국민의힘은 물론 대한민국의 운명마저 결정할 만큼 막중하다”며 “그 책무, 단순히 경륜과 패기만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다. 지혜와 정치력, 그리고 결단력이 요구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원내대표 경력을 가진 전직 4선 국회의원의 경륜과 정치력 등을 강조한 것이다. 또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전 총장뿐 아니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이미 만나 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모든 방법으로 가능한 야권 후보를 만나겠다”며 대선 승리를 이끌 야권후보 단일화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출마 선언 직후 광주로 내려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2019년 4월 선거법 패스트트랙 처리를 물리력으로 막아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법 위반, 국회 회의장 소동, 공동감금·공동퇴거불응 혐의로 기소되며 고착된 강경보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행보로 보인다. 나 전 의원은 “당이 잘못한 것과 제가 부족한 것에 대해 내려놓고 반성으로 시작하는 것이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이라며 “어제는 석가탄신일을 맞아 대구와 부산 사찰을 다녀와 민심을 들었고 오늘은 첫 행보로 광주에 가서 민심을 듣겠다”고 설명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2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경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출사표…“원내경험 없어 안 된다면 윤석열은 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불가역적인 보수 혁신’을 약속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날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대표가 되고 싶다. 그래서 대선에서 멋지게 승리해 보이고 싶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한 그는 “젊은 세대가 우리를 지지해주기를 바란다면 젊은 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제를 최우선 과제로 논의해야 한다. 자산불평등, 젠더, 입시 공정 등 테마는 많고 할 일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직 경쟁선발제 △당내 공직선거 후보자 자격시험 도입 △토론 배틀을 통한 대선 경선 흥행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나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정권교체’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방법론에서는 개혁과 젊은 지지층 확보를 강조하며 차별화한 것이다.
그가 주력하고 있는 ‘남성 역차별’ 주장이 20대 남성의 표심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20대 남성을 위한 발화를 제가 했다는 분석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제가 말했던 공정한 경쟁 가치는 오히려 20대 여성들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 경험이 없다는 비판에는 “원내 경험 없는 것이 당대표직을 수행하기에 부족하다면, 원내 경험과 정치 경험 없는 대권 주자를 어떻게 영입하겠다는 것이냐”며 “밖에 있는 윤석열 전 총장이 들으면 깜짝 놀라겠다. 안 들어오면 당신들 탓”이라고 응수했다.
이제 당대표 후보가 된 이 전 최고위원은 첫 지방 행선지로 대구를 정했다. 그는 “호사가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티케이(TK·대구경북) 지역이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저는 전면으로 부정한다. 티케이의 가장 낮은 곳에서 행보하며 당원들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당원 투표 반영 비율이 70%에 이르는 만큼 국민의힘 당심의 본산인 티케이 지역 공략부터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론조사 공고한 양강 구도…세대 대결 기싸움 치열
나란히 출사표를 던진 두 사람은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오차범위 안에서 수위를 다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7~19일 전국 유권자 1009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이 전 최고위원 지지율은 19%, 나 전 의원 지지율은 16%였고, 전임 원내대표인 주호영 의원은 멀찌감치 떨어진 7%로 3위였다. ‘초선 돌풍’을 일으키겠다며 출마를 선언한 김웅 의원과 4선의 홍문표 의원이 각각 4%, 5선의 조경태 의원과 초선 김은혜 의원이 각각 2%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두 사람의 출마로 ‘중진 대 신진’ 대결 구도가 굳어지면서 기싸움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김은혜 의원은 이날 <와이티엔>(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역선택으로 서울시장 여론조사 경선에서 졌다’는 나 전 의원을 향해 “본인에 대한 성찰보다는 남 탓, 제도 탓을 하고 있다. 실패가 있는 경험, 그런 변명으로 대선 정국을 돌파할 수 없다”고 직격했다. 이 전 최고위원도 출마 선언 뒤 기자들과 만나 주호영 의원을 겨냥해 “젠더 문제에 대해서 섣부른 발언”을 했다며 “여성 할당제 등 이런 구호로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8일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를 맞이해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낸 주 의원을 비판한 것이다.
당대표 후보 난립으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최고위원 대결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이날 이용 의원과 김용태 경기 광명을 당협위원장이 청년 최고위원에, 이영 의원과 정미경 전 의원은 최고위원에 각각 출사표를 던졌다. 조수진 의원도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6·11 전대에서는 4명의 최고위원과 1명의 청년 최고위원을 선출한다. 앞서 선언한 배현진·김재원·조대원·원영섭·천강정·도태우 후보에 이어 현재까지 모두 9명이 출마 의사를 밝혔고, 이용·강태린·홍종기·김용태 4명의 후보가 청년 최고위원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장나래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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