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10월 10일 ‘삼성디스플레이 신규투자 및 상생협력 협약식’이 열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 들어서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는 9일 법무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결정과 관련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들 모두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심사와 관련해선 입을 꼭꼭 다물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석방은 법무부 가석방심의위원회가 규정과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는 것이고, 청와대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는 ‘침묵’의 근거로 절차와 법규정을 들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채이배 전 의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용을 사면하면 박근혜·최순실씨에 대한 사면도 당연히 요구가 있으니까 이런 부분들을 회피하려고 가석방으로 가는 것이다. 제가 보기에는 이미 법무부가 청와대와 이 정도의 의견은 좀 조율돼서 진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과 ‘뇌물’ 등으로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만을 사면할 수는 없으니 가석방이라는 ‘분리된 길’을 찾았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이 부회장의 사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이들의 사면론에 대해 “여러 가지 형평성이라든지 과거의 선례라든지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이 결코 마음대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곤혹스러움을 내비친 바 있다.
이에 최근 여권 안팎에선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하는 사면 대신 가석방 여론이 형성돼 왔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0일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소관이고, 반도체 산업의 요구, 국민 정서, (이 부회장) 본인이 60% 형기를 마친 점 등을 갖고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엔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재벌총수라는 이유만으로 사면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면서도 “법이 정한 기준이 부합된다면 법무부가 법과 원칙에 맞게 심사한다면 그건 별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가석방 가능성을 열었다.
여권 인사들이 이처럼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군불을 땐 데는 삼성이 반도체 공급망 확보와 ‘글로벌 백신 허브’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핵심 정책에 기여가 크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난 5월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때 17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선물 보따리로 내놨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국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위탁 생산계약 성사 등 ‘백신 허브’ 구상에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은 미국 순방을 마친 뒤 지난 6월 4대 그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를 받고는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 지금은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재계의 투자와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들의 사면 요청을 반영한 가석방으로 여권은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대통령의 권한과 결정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혁연대는 “가석방 특혜의 책임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 없이는 가능하지 않으며,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가석방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여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 역시 야당 의원 시절이었던 6년 전,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의 가석방 논란이 불거지자 “재벌 대기업의 총수나 임원들은 그동안 국가 경제에 기여해온 공로나 앞으로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 때문에 이미 법원에서 형량을 정할 때부터 엄청난 고려를 받고 있고, 국민들이 볼 때는 특혜를 받고 있다”며 “이미 형량에서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데 가석방 특혜까지 받는다면 그것은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경제정의라는 관점에서 더 분명한 원칙이나 기준들을 세워야 경제정의가 살면서 기업도 발전하고 국민들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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