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으로 내놓은 8·15 경축사에서 북한에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바탕으로 남북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한반도 모델’을 제시했다. 일본을 향해선 해방 직후 조선인들이 보여줬던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하지만 임기를 8개월 정도 남겨둔 현실 때문인지 직접적·구체적 제안보다 앞으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대북·대일 정책의 큰 원칙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은 광복 76주년을 맞아 15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내놓은 ‘76돌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에게 분단은 성장과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동시에 항구적 평화를 가로막는 강고한 장벽”이라며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서 “동독과 서독은 (1990년) 45년의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이뤘다. 신의와 선의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고, 보편주의, 다원주의,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독일 모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남북도 평화 공존을 통해 지역 발전에도 공헌할 수 있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우리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한반도 평화를 꿈꾸”고, 정세가 아무리 어려워도 “평화와 번영의 통일 한반도”라는 ‘꿈’을 포기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내놓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 공존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라는 3가지 열쇳말을 뼈대로 ‘한반도 모델’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제시한 것이다.
관심을 모은 ‘대일 메시지’에서도 현 교착 국면을 타개할 만한 ‘새 제안’을 담진 않았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며 “한·일 양국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한 경제 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바로잡아야 할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다소 추상적 언급을 내놓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은 앞선 3·1절 기념사에선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양국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였었다.
이는 8일 폐막한 도쿄올림픽을 한·일은 물론 남북 관계 개선의 중요한 기회로 삼으려던 시도가 무산된 상황에서, 임기 내에 상황을 호전시킬 계기를 마련하는 게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한국도 문 대통령 임기를 생각할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등 현안과 관련해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해방 다음날인 1945년 8월16일 일본과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선언한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인 민세 안재홍(1891~1965)의 연설 내용을 인용하며 “폐쇄적이고 적대적인 민족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그 밖에 △내년 상반기까지 국산 1호 백신 상용화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등 글로벌 공급망 강화 △올해 안에 실현 가능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밝히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서영지 길윤형 기자,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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