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경.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현 정부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자 간 회동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인사협조 등을 둘러싼 양쪽의 이견으로 한 차례 연기된 만남에 ‘갈등 의제’가 하나 더 얹어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 쪽은 21일 회동을 위한 실무협의를 재개했다.
청와대는 이날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윤 당선자 발표에 대해 따로 밝힐 입장은 없다고 했다. 지난 18일 문 대통령이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개별적인 의사 표현은 하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청와대 참모들도 직접 대응을 삼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윤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속도전에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우선 윤 당선자가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496억원을 마련하려면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의결이 필요하다. 아무리 인수위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집무실 이전을 추진한다고 해도 문재인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당선자의 예산 협조 요청을 문 대통령이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대통령 집무실 마련을 위해 국방부를 합동참모본부로, 합참을 수도방위사령부로 이동하는 것도 국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야 가능하다. 북한이 올해 들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있고 4월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4월25일 건군절을 전후해 도발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안보 공백’을 무릅쓰고 한국군 지휘소인 국방부와 합참을 이동시키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강원도 산불 등 대형 재난 상황에 대비하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이동도 함께 검토할 사안이다. 21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소집되는데 이 자리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논의할지 주목된다.
“청와대를 임기 시작인 5월10일에 개방하여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는 윤 당선자의 선언도 올해 5월9일까지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문 대통령에게는 압박 요인이다. 5월10일 청와대 전면 개방을 위해서는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에 동선 조정, 경관 정비 등 물리적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 16일 대통령-당선자 회동이 무산된 뒤 문 대통령은 18일 ‘의제 조율 없는 신속한 대화’를 제안했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자와의 빠른 만남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그 뒤에도 회동 일정을 위한 실무협의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윤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까지 밝히면서 두 사람의 회동엔 더욱 막중한 부담이 실리게 됐다. 역대 대통령-당선자 회동 중 가장 시기가 늦어진 만큼 이번주 안에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만남이 오늘 이뤄질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그 만남을 통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결과 이뤄낼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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