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9일 추석 연휴 첫날을 맞아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인 ‘명동밥집’을 찾아 김치찌개를 만들며 맛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2022년 8월17일)에서 한 약속은 깨졌다. 10월29일 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는 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참사 전후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경찰청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매일 찾아 추도했다.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을 이렇게 맞았다. 고물가, 고금리, 공급망 불안 등 경제위기, 북한 미사일 발사 시험 등 안보위기에 이어 많은 사람이 서울 도심에서 목숨을 잃는 안전위기까지 겪었다.
국민의 실망감은 여론조사 결과에 그대로 투영됐다. 코리아리서치가 문화방송(MBC) 의뢰로 11월7~8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33.4%, 부정평가는 59.7%였다. 긍정평가는 한국방송(KBS) 조사(11월6~8일, 전국 성인 1천 명, 한국리서치)에선 30.1%였고, 에스비에스(SBS)는 28.7%(11월7~8일, 전국 성인 1006명, 넥스트리서치)였다.
30% 전후의 긍정평가는 역대 대통령(1년차 2분기 기준)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나쁜 성적표다.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83%)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62%)도 높았다. 빠르고 과감한 개혁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 덕분에 국민의 지지를 모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도 75%로 높았다.(전국 성인 1001명 갤럽 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윤석열 정부 6개월을 대통령과 집권세력, 경제, 안보 등 분야별로 나눠 분석했다. 윤석열 정부와 함께 여당인 국민의힘의 난맥상도 짚었다. _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지 반년 만에 한국 사회는 겹겹의 악재를 맞닥뜨렸다. 대형 참사, 복합적인 경제위기,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대통령 취임 173일째인 2022년 10월29일 밤, 서울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156명이 압사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과 2㎞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의 재난 방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참사 당일 저녁 6시34분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부터 경고음이 울렸지만 경찰은 참사 직전까지도 대통령실 주변에서 진행된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을 위한 전국집중 촛불대행진’ 집회 등을 통제하는 데만 주력했다. 밤 11시46분께 윤 대통령이 “피해 시민들에 대한 신속한 구급 및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지만, 이때는 이미 수십 명이 숨 쉬지 못한 채 도로에 눕혀 있었다.
“이번 참사는 운이 나빠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나쁜 계획, 정확히는 나쁜 무계획 탓에 벌어진 것”이다. 재난 전문가인 스콧 게이브리얼놀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무계획’을 참사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턱없이 부족한 경찰력을 배치했고, 이 같은 사고를 예견해 대비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무계획이 부른 참사라는 뜻이다.
‘무계획’은 이태원 참사 이전부터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열쇳말 중 하나였다.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를 닫고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부 건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새 대통령 관저를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꾸는 과정도 갑작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윤 대통령은 6개월 가까이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에서 지내다가, 11월8일에야 한남동 관저에서 공식 출근을 시작했다.
사전 대비도 철저하지 못했다. 애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대통령실 이전 비용은 496억원으로 편성됐다. 대통령실 쪽은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이전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종합한 대통령실 이전 예산 내용을 보면, 2022년에만 모두 864억원이 집행될 예정이다. 올해 368억원이 추가 편성됐다.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한 직간접적 비용은 총 1조원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2023년(1539억1900만원)과 2024년(411억1700만원) 예산이 편성된데다,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연쇄 이동해야 해서 추가예산(7980억원)까지 필요한 탓이다.
무계획은 무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시작도 못하고 좌초된 대선 공약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 수를 줄여 정예화하고, 분야별 민관합동위원회를 꾸려 조직을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민관합동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미국이 한국 수출 전기자동차에 대해 보조금을 주지 않는 차별대우 법안을 하원에서 8월12일 통과시킬 때도, 한국 정부는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었다. ‘뒷북 대응’으로 윤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가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해 문제제기하겠다고 밝혀놓고선 ‘48초 만남’을 하고 오는 데 그쳤다.
무계획·무능의 밑바탕에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 문제가 깔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지명한 장관들의 인맥(네트워크)에 어떤 위험요인이 있는지 분석한 논문을 보면 이런 점이 드러난다.
이창길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2022년 5월 발표한 논문 ‘정부 초기 내각 네트워크의 구조적 위험요인 분석’에서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각 부처 장관 등을 포함한 20명의 출신 대학과 지역, 정당 또는 고시 출신 여부 등을 따져 ‘네트워크’를 분석했다(이후 낙마한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포함). 이를 통해 정권 핵심그룹과의 응집성 또는 정치적 독립성, 정당적 편향성 등을 따져봤다.
그 결과, 부처별로 장관들의 ‘중심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국정과제의 성공적인 운영이 우려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요 국정과제를 수행해야 할 중요 부처에 적절한 장관을 배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 내각의 학력(출신대학)·지역 편향성과 정권 핵심그룹의 응집성은 높게 나타났다.
이창길 교수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핵심그룹의 응집력은 (문재인 정부에 견줘) 상당히 강하지만, 정부 정책은 부처 간 협력 등 내각이 원만하게 작동해야 잘 시행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내각 구성은 그렇게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좌동훈 우상민’이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측근을 인선했지만 오히려 정부가 ‘한 팀’을 이뤄 국정을 이끌고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분석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은 장관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강하다. (의존도가 낮은) 장관들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많고 장관이 대통령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공무원 조직이 대통령만 바라볼 뿐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의미다.
실제로도 윤석열 정부의 수직적 위계와 검찰 출신 대통령 특유의 고압적인 태도는 정부조직을 움츠러들게 한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야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에서 관료들이 전혀 일하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다음 정부로 바뀌면 추진했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겁이 나서 못한다고 하더라. 감사원이 과거 정책을 가지고 들쑤시고 다니니 공무원들이 본능적으로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를 이끄는 핵심 세력이 과거 정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만 관심을 쏟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부 부처 어디도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열어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왜 4시간 동안 쳐다만 보고 있었냐”며 2시간 동안 경찰만 강하게 질책했다.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을 신설한 이상민 장관과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검찰은 집행기관이어서 국가의 거시정책을 만들고 운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대통령과 주변 인물이 여전히 ‘수사하는 속성’이 국정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국가 시스템이 온전히 새 정부로 연장됐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의 지난 6개월 행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뒷수습에 급급했다. <한겨레21>이 5월10일부터 11월9일까지 윤 대통령의 공개일정(외교 일정 제외)을 확인한 결과, 경제 관련 회의가 19차례, 재난재해 관련 일정이 15차례로 가장 많았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3년 만에 최고치를 찍고 무역수지가 14년 만에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워진 경제 상황, 수도권 집중호우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 재난재해 상황을 뒷수습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러한 회의와 외부 일정 등에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비전을 보여주거나, 재난재해에 앞서 예방 대책을 내놓으며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군과 보훈 관련 행사 참석(14차례), 정치인 만남과 정치 관련 일정(13차례)도 많았다.
철저한 계획 없이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주워 담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연장노동 허용 등의 정책이 대표적이었다.
대통령 임기 초반 6개월은 국정의 방향성과 정책을 보여줘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특히 단임제인 한국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국정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임기 초반 어떤 개혁 어젠다를 들고나오는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한 달 안에 일자리위원회 설치(1호), 국정교과서 정상화(2호),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3호) 등의 업무지시를 잇달아 내놓은 이유도 그래서다. “임기 초에 빅 이벤트가 남북관계에서 발생하다보니 오히려 개혁 정책 추진을 더 하지 못해 답답한 측면이 있었다”고 전 청와대 관계자가 말할 정도로, 임기 초반의 강한 정책 추진은 정권의 성패와도 연결된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인수위 때부터 세밀한 정책 추진 계획을 세웠다. 백악관은 누리집에 ‘우선순위’ 페이지를 따로 개설했다. 국민도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담당자도 지켜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공화당 인사와 실리콘밸리 출신 인사까지 정책 평가 작업에 참여시켜 정책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혔다.
“대통령 임기(5년) 가운데 6개월이면 10%가 지난 것이다. 초반에는 당연하게 조금 시행착오가 있었더라도 이제는 좀 안정돼야 할 때인데 그게 안 되는 게 (지금의) 본질적인 문제다.”(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시 물어야 할 때다. 남은 4년6개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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