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0일 중앙선관위가 노 대통령의 <한겨레> 인터뷰 등을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한 데 대해, 이르면 21일 헌법재판소에 ‘정치인인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현직 대통령의 헌법소원 제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주 중 선관위 결정에 대한 헌법쟁송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라며 “지금으로서는 권한쟁의 심판청구보다 헌법소원 쪽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르면 21일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실장은 헌법소원 제기 사유에 대해 “기본적으로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국민 누구나가 갖고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이기 때문에 제한되는 게 아니라면 국민의 기본권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헌법학자 쪽에서는 권한쟁의 심판청구가 맞지 않으냐는 견해도 있었지만, 국민들 눈에 대통령과 중앙선관위 사이의 권한 다툼처럼 비춰질 가능성이 있어 헌법소원을 선택하는 게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실장은 “선관위 결정과 권한은 존중한다는 취지를 이미 밝혔다. 다만 그 기준을 알 수 없으니 필요하면 선관위에 질의해 가면서 (대통령이) 발언할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노 대통령이 연설에 앞서 선관위에 선거법 위반 여부를 질의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은 개인이 아닌 헌법기관으로서의 발언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개인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투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아, 실제 헌법재판소가 이 사안을 심리할지는 불투명하다. 원고로서의 지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노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청구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곧바로 ‘각하’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헌법소원 방침을 “헌정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선관위 결정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님을 청와대가 알면서도, 논란을 장기화해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으로 요청한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법적 절차를 따르겠다는 걸 놓고 뭐라고 답변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선관위의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게 결정문 내용 아니냐”며 당혹스럽다는 뜻을 밝혔다. 신승근 김태규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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