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완화 기대감에 대운하 추진 ‘물가압박’
소비자 물가 3.6%↑…곡물값 급등 ‘3월도 빨간불’
소비자 물가 3.6%↑…곡물값 급등 ‘3월도 빨간불’
물가 오름세가 몇 달째 진정되지 않고 있는데도 이명박 정부가 물가정책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듯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물가 상승 요인을 근본적으로 다스리기보다는 행정력을 동원한 과거식 ‘물가 억누르기’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물가상승 불씨 키우면서=3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중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2월 중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달에 견줘 3.6% 올라 지난달(3.9%)보다 다소 오름세가 둔화했다. 생활물가지수 상승률(4.6%)도 지난달(5.1%)보다는 낮아졌다. 하지만 2월 중 물가 오름세가 잠시 주춤한 것은 지난해 2월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허진호 통계청 물가통계과장은 “2월 조사에선 라면값 등 식료품값 인상분과 대학 등록금이 반영되지 않아 3월 물가는 다시 크게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의 고물가 행진은 국제 유가와 곡물가격 급등이라는 대외적 환경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뿐더러, 대내적으로 ‘6% 성장’ 목표를 고수하며 물가를 자극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 완화와 대운하 건설 추진 움직임 등이 대표적이다. 3일 국민은행 집계 결과, 2월 중 서울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4.8%와 3.7% 올랐다. 특히 서민이 많이 몰려 사는 강북(8.1%)의 집값 상승률이 강남(1.8%)보다 월등히 높았다.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해 ‘영어 교육 열풍’도 물가 불안에 한몫을 했다. 2월 중고입 학원비(종합반)는 5.1% 올라 전체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새 정부가 경기둔화를 우려해 통화정책 완화 의지를 보이는 것도 걱정거리다. 지난달 29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의 물가 오름세는 유가와 곡물 무기화 등 대외 여건 탓으로, 중앙은행의 유동성 관리 차원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엔 어차피 외부 요인 때문에 물가가 오를 바에야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을 주도록 금리라도 내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747 성장론’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성장에 무게를 둔 새 정부의 등장으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1970년대식 물가억제 방식 동원=다급해진 정부도 3일 ‘서민 생활 안정’ 대책을 내놓았지만, 곳곳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전력요금 체계 조정 방안이 대표적인 보기다. 이날 정부는 2010년까지 전력요금의 교차보조를 해소해 서민층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교차보조란 요금 지급 여력이 있는 계층한테는 원가보다 좀더 높은 부담을 지우되, 그만큼 농어민과 저소득 서민계층, 산업용 전력 수요자에게는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를 말한다. 따라서 교차보조를 해소하면 그만큼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이 증가해 공산품 가격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는데다, 농어촌과 서민의 부담도 되레 늘어날 수 있다.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 ‘억누르기’ 방식도 문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행정력을 동원해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시장의 가격구조를 왜곡해 중장기적으로는 물가 부담을 더 키울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 경제를 70년대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물가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정책 방향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지금의 상황은 유가나 곡물가 등 대외 요인뿐 아니라 과잉 유동성에서 비롯된 수요 쪽 물가상승 압력이 바탕에 깔린 것”이라며 “정부가 물가는 행정지도를 통해 관리하고 성장률에만 신경을 쓰겠다는 생각이라면, 지표상의 물가는 적당히 관리할 수 있을지언정 자산거품 등 더 큰 상처를 우리 경제에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성 김영희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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