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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이제 대통령님이 감찰을 받을 차례입니다

등록 2013-09-30 15:28수정 2013-09-30 23:36

채동욱 검찰총장(왼쪽)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채동욱 검찰총장(왼쪽)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 뒷조사·미혼모와 아이 사찰·핵심 공약 파기
이보다 공직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흔드는 일은 없다
엊그제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표를 슬그머니 수리했더군요. 대통령이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지 애쓰는 것만 같습니다. 16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진상 조사가 끝나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 당신의 입이라는 이정현 홍보수석은 그 전날 이렇게 말했죠. “이건 공직자 윤리 문제지 검찰 독립성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진상이다.” 떳떳하면 왜 직접 감찰을 받지 않느냐고도 말했죠. 뱉은 말에 침도 마르기 전에 그랬으니, 그러면 진상은 밝혀진 것입니까.

법무부가 실시한 먼지털기식 감찰 결과는 <조선일보>와 다름없는 ‘…카더라’를 하나 더 추가한 것밖에 없더군요. 감찰했다는 사람이나 이를 발표하는 사람이나 참으로 민망해 보였습니다. 그게 대한민국 검사가 할 일입니까?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제 채 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은 사실로 밝혀진 건가요? 분명히 아실 게 있습니다. 법무부 대변인이 발표 말미에 “혼외자식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건 아니다”라며 발을 뺐다는 사실입니다. 의혹의 똥물 한 바가지 뒤집어씌우고는 명예훼손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 눙쳐버린 것입니다. 명예훼손을 왜 파렴치 범죄라고 하는지 알 만합니다. 파렴치한 법무부와 정부 수반, 그러고도 어떻게 해외에 얼굴 들고 다닐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게다가 얼마나 당황스러우셨겠습니까. 공교롭게도 보건복지부 장관도 안 받겠다는 사표를 부득부득 내던지고 잠적한 터에, 검찰총장 것만 덜렁 받으려니 말이죠. 총장은 더 파도 나올 게 없는데다 검찰 조직이 끓고 있으니 그렇게 했다지만, 기초연금 공약의 파기를 인정하게 되는 복지부 장관의 사표는 어떻게 한다죠? 사찰 혹은 감찰이 아니라 두들겨 패고 싶기도 하겠지만, 더 많은 비난이 쏟아질 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으로 딱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대통령과 함께 고민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 진짜 나쁜 대통령일까.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한테 내년부터 20만원의 연금을 드리겠다”는 약속의 파기를 공식화한 날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했습니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던진 말이었죠.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한참 인기가 바닥일 때였으니 노 대통령은 그 한마디로, 임기 말까지 민생은 안 챙기고 허황된 주장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려는 나쁜 정치인으로 국민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연초 퇴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누가 콕 찍어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거짓말이 드러날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내뱉던 말이 바로 그 ‘나쁜 대통령’이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하는 습관성 거짓말 때문에 국민들은 아예 ‘뽑은 사람이 잘못’이라고 체념했죠. 이제 취임 7개월밖에 안 된 새 대통령이 그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러나 똥물에도 급이 있습니다. 어느 주장이 진짜고 어느 주장이 가짜인지, 어느 곳이 제대로 된 평가이고 어느 것이 거짓된 낙인인지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는 상대방을 선입견의 그물에 가둬버리는 프레임 전쟁에 밤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사실이나 진실의 문제도 이념, 주장, 시각의 문제로 뒤집어버리는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은 그 토양이 되었습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는 그 좋은 실례입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의 오류, 의도된 왜곡, 표절 등 저질의 문제입니다만, 정치권과 정치적 집단(언론 포함)은 이를 시각, 사관, 이념의 문제로 변질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매사에 기본이 되는 사실과 진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실종돼 버렸습니다. 참 나쁜 풍토입니다. ‘나쁜 대통령’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 중임제는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었습니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안한 것은 정략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지만, 단임제 문제는 열이면 아홉 동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이미 그 취지에 공감했고, 지난 대선 때는 아예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문제의식은 같습니다. 게다가 정략이란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언젠가 처리해야 할 문제를 본인이 욕을 먹더라도 제 임기 안에 처리하려 한 것으로 본다면, 정반대의 평가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로 말미암아 노 전 대통령이 얻을 실익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 고교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지난 대선 공약을 파기하거나 후퇴시키는 것은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박 후보는 대선 때 이런 공약들을 내세워 많건 적건 유권자의 이목을 끌고 표도 얻었습니다. 실익을 노리고 약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이를 파기하거나 대폭 후퇴하고 있으니, 이것은 심상정 의원이 지적한 대로 기획된 사기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국민을 상대로, 한 건도 아니고 여러 건의 사기를 쳤으니, 진퇴 문제가 나올 법한 상황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탄핵 서명운동까지 벌어졌었죠.

그런데 그런 사기보다 더 중요한 건 신뢰의 파괴입니다. 대통령이 대놓고 국민을 속이고 표를 사취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나쁜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습관적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전 국민에게 약속하고 표를 챙긴 뒤 약속을 파기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반도 대운하 등 나라를 망칠 공약을 포기하라는 요구가 더 많았었죠. 그런 점에서 ‘대선 사기’와 ‘신뢰 파괴’의 정도는 훨씬 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이외에 국민을 얕잡아보는 태도가 문제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제 처음 제기한 공직 윤리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대통령님이 채 총장의 사표도 수리하지 않겠다며 걸고넘어졌던 그 문제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대통령님이 감찰을 받아야 합니다. 이유는 잘 아실 겁니다. 무엇보다 민간인을 사찰한 게 첫째 이유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아무도 돌봐줄 이 없는 미혼모와 그의 아이입니다. 무슨 이유로도 더 불행에 빠뜨려선 안 될 사람들입니다. 불순한 목적 아래 검찰총장을 뒷조사하고 의혹을 흘린 혐의도 있습니다. 모두 직권남용에 해당합니다. 공직자들이 해서는 안 될 가장 나쁜 짓이죠.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문제로 나라가 온통 들끓었던 게 언젠데 출범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정부가 그 짓을 했으니 죄질은 더욱 나쁩니다.둘째는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한 거짓말입니다.
곽병찬
곽병찬

이보다 더 공직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흔드는 건 없을 겁니다. 국민적 거짓말로 유권자의 표를 가로채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국민을 기망한다면 공무원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윗물이 그러한데 아랫물이 맑을 순 없습니다.

다른 문제도 여럿입니다만 일단 두 가지 사안부터 감찰을 받아야 합니다. 요즘 청와대 어법으로 말해볼까요? 떳떳하면 자청해서 감찰을 받을 일이지, 자리에 들러붙어 있으면서 감찰도 거부해? 감찰을 받지 않으면 국정이 흔들리는데….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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