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으로 불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선세력 국정농단’, ‘권력암투’ 설 등이 난무하는 가운데, 30일 흐린 날씨 속에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연합뉴스
주말에도 비서관회의…정호성 실장은 직접 문건 반박
정윤회(59)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 문건 공개 파장이 날로 커져가면서, 진상 규명과 사태 수습의 책임을 지게 된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세계일보> 보도 당일인 28일 곧바로 검찰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내는 등 발빠른 수습에 나섰지만, 이번 일로 청와대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휴일인 30일 오후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여는 한편, 별도의 채널과 회의 등을 통해 이번 사안에 대한 ‘출구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날 대외적으로는 “과거에 (김기춘 실장 등이) 보고받고 진위 파악이 끝난 사안이라 검찰 조사를 지켜보는 것 외에 (청와대) 내부적으로 큰 동요나 분주한 움직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간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파워게임’의 실상 일부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통 인사’, ‘깜깜이 인사’ 등으로 비판받았던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이나, ‘비선 정치’ 및 ‘문고리 권력 전횡’ 등으로 표현됐던 국정운영의 문제점 등이 결국 이런 물밑 다툼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향후 ‘고소인 조사’ 등을 통해 그동안 벌어졌던 내부 사정 등이 언론에 공개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이번 사안을 곧바로 검찰로 넘긴 것도 이런 곤혹스러움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기에 의혹을 진화하지 못하면 집권 3년차에 접어드는 박 대통령이 입게 될 정치적 타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이날 직접 일부 언론 인터뷰에 나서 문건 내용을 반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동시에 이번 사건을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춰 쟁점화시켜 여론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내부 문건 등 기밀관리가 허술했다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이번 사안이 ‘권력 실세간 암투’ 및 ‘비선 국정개입’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친박 핵심 중에서도 청와대와 가장 교감이 깊다는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청와대의 이런 의도를 반영하듯 이날 국회에서 “(문건 유출 경위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인 것과도 맥이 닿는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안에 대한 공개발언을 할지 여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다. 청와대 내부 문서가 정국의 큰 파장을 몰고 온데다, 내부 문서 유출 등 공직기강과 관련된 문제도 얽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침묵을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회의에서 언급을 하더라도 청와대가 이미 밝힌 대로 “검찰 수사를 통해 문건의 진위가 분명하게 가려지길 바란다”는 공식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나 동생 박지만씨 등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꺼려 아예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되는 등 청와대 내부에서도 예측이 엇갈리고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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