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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예단하거나 남 탓하거나 …박 대통령 발언으로 본 상황 인식

등록 2014-12-01 20:52수정 2014-12-02 13:52

“근거없는 일로 나라 흔든다”
의혹 해명없이 헛소문 단정
“확인없이 비선 의혹 몰아가”
언론에 노골적 불만 드러내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정윤회(59)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 보고서 파문에 대해 “근거 없는 일로 나라를 흔든다”,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청와대 내부 문건이 공개된 지 사흘 만에 박 대통령이 직접 강경대응 방침을 내놓은 것은 박 대통령 역시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발언을 뜯어보면,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청와대 내부 문서 유출’ 사건으로 규정하고 ‘누군가 근거 없는 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에는 시중에 떠도는 루머들과 각종 민원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런 사항들을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외부로 유출시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언급한 대목은 이런 상황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보고서 내용이 ‘떠도는 루머’라는 결론만 있을 뿐, 청와대가 보고서 작성 경위를 파악했는지 여부나 그에 따른 조사 및 사후 처리 등을 어떻게 했는지 등 의혹 해소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나 이번 문건 유출 사건을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고발한 청와대의 대응을 종합해보면, 평소 청와대 내부에선 ‘기초 확인도 없이 만든 동향보고서’도 작성돼 공공기록물로 분류되는데 이게 외부로 유출됐기 때문에 혼란이 생겼다는 황당한 해명이 된다.

청와대에서 생산한 문서가 청와대에서 유출됐는데, 잘못을 외부로 돌리는 듯한 ‘남 탓 발언’도 반복됐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번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언론을 겨냥해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의혹을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최고 권력기관에서 작성된 문서의 내용인 만큼 의혹을 갖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언론이 ‘몰아간다’며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워낙 강경하고 단정적이어서 수사를 시작한 검찰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보고서)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근거 없는 일”,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국민들 혼란 초래”, “만만회를 비롯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야” 등 이미 내용의 진위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모순된 발언을 내놓았다. 검찰이 박 대통령의 주장과 다른 수사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악의적인 중상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라는 박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검찰 수사의 초점은 결과적으로 ‘의도적인 문건 유출 사건’과 이에 따른 ‘명예훼손’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청와대 일부 참모들 사이에선 “너무 강경하게 나갔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에 지침을 주는 듯한 발언도 문제지만, 박 대통령이 모두 알 수 없는 내용들까지도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한 게 아니냐는 우려다. 만약 검찰 수사결과 보고서 내용 중 일부라도 사실로 확인된다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심각한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 스스로 퇴로를 막은 셈이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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