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파문
1급기밀 남북대화록은 “알권리”
‘찌라시’라는 문건은 “국기문란”
1급기밀 남북대화록은 “알권리”
‘찌라시’라는 문건은 “국기문란”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 등이 담긴 청와대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은 지난 2012년 대선 기간 1급 기밀문건인 ‘10·4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여권이 유출·공개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균형감을 상실한 이중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시 청와대 문건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여권이 유출·공개했을 때는 박 대통령부터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두둔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8일 <세계일보> 문건 유출 보도에 대해 해당 문건이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나온 내용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깎아내린 바 있다. 결국 청와대는 ‘찌라시’를 유출한 행위가 국기를 뒤흔드는 중대범죄라고 규정한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선 캠프는 1급 비밀에 해당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유출해 야권 공격에 활용했다. 당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등이 대화록 내용을 유출한 뒤인 10월16일 박근혜 후보 캠프의 이정현 공보단장은 “국가안보와 관련한 엄중한 문제이고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전제조건 없이 대화록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며 대화록 공개를 요구했다. 박근혜 후보 자신도 같은해 12월4일 대선후보 1차 토론회에서 “합법적 절차에 따라 대화록을 공개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 권리 충족’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급기야 지난해 6월에는 남재준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국익훼손과 대외 신뢰도 추락 등을 우려한 야권의 거센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뒤 공개했다. 새누리당 김태흠 당시 원내대변인은 무단공개 직후 “국민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반겼다.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은 김무성 의원은 2012년 12월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대화록 관련 내용을 낭독한 혐의를 받았지만, 대화록 내용을 비밀문건이 아닌 ‘찌라시’를 통해 봤다는 김 의원의 일방적 주장을 검찰이 받아들여 사법처리 대상에서도 벗어났다.
박근혜 정부가 의도적으로 공개한 남북대화록과 돌출적으로 공개된 ‘정윤회 동향보고서’는 같은 청와대 문건이긴 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이전 정부의 외교문서로 비공개가 원칙인 남북대화록 공개에는 ‘알 권리’를 내세우고, 정권의 비선세력 의혹을 청와대 내부에서 제기한 문건에 대해선 언론기관 고소 등으로 ‘알 권리’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명확하게 ‘정치적 실리’로만 계산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이중 잣대에 화력을 집중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대통령은 남북 대화록(유출·공개)을 국민의 알 권리라고 했다. 공명정대해야 할 검찰은 무력하고, 언론은 국민 알 권리보다 징역을 걱정한다. 이게 바로 적폐”라고 지적했다. 정세균 비대위원도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정윤회 문건 유출, 어느 게 더 심각한가”라고 반문했고, 박지원 비대위원은 “지켜야할 것은 정상회담 회의록이다. 정작 알아야 할 문건에 대해서는 숨기고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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