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② 반성과 점검] 제도·정책의 변화
청와대·여당 진상규명 과정서
정치적 책임 회피…진정성 의심
원전사고 대처 조직은 구성 못해
청와대·여당 진상규명 과정서
정치적 책임 회피…진정성 의심
원전사고 대처 조직은 구성 못해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세월호 이후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국가개조론’(근본적 국가혁신)을 내놨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워낙 큰 탓에 지난 1년 동안 안전과 관련된 정부의 조직은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었고, 이에 따른 정책과 제도 역시 큰 변화를 겪거나 변화가 진행 중이다. 다만 ‘하드웨어’가 바뀐 수준으로 재난과 안전에 대처하는 ‘소프트웨어’도 업그레이드됐는지 여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특히 제도 변화를 주도한 집권세력의 진정성이 끊임없이 의심받은 점도 이런 회의적인 시각을 키웠다. 지난 1년 동안 유족들을 철저히 외면해왔던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세월호 1주기 당일 해외로 출국하는 일정을 잡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사후 대책 분야 변화는, 참사 1개월여 뒤에 나온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뼈대가 됐다. 이 가운데 핵심은 국무총리실 산하 국민안전처(장관급) 신설이었다. 참사 직후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엉뚱한 변명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이에 박 대통령은 국민안전처(담화 당시엔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이를 국가차원의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로 삼겠다고 밝혔다.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11월 해경과 소방방재청과 안전행정부의 안전본부, 해양수산부의 해양교통 관제센터(VTS)까지 통합해 3명의 차관급 본부장과 1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으로 출범했다. 안전처는 육상과 해상의 재난 대응 체계를 통합해 관리하게 됐을 뿐 아니라, 재난안전예산 사전협의권과 재난관련 특별교부세 배분권, 기관경고·징계요구권, 안전 분야 관련 특별사법경찰권까지 거머쥔 막강한 조직이 됐다. 또한 안전처와 업무 협조 및 대통령 보좌를 위해 청와대에 재난안전비서관직도 새로 생겼다.
이후 안전처는 각 부처와 함께 정부 재난안전관리의 표준을 만들기 위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확정하고, 향후 5년간 약 30조원을 투입해 재난대응훈련 강화 및 재난안전예방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을 맡고 있다. 또 안전처는 전국의 교량과 항만, 고층아파트 등의 시설물과 승강기, 어린이 놀이시설 등 86만건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국가안전대진단을 이달 말까지 끝낼 예정이다.
하지만 유해화학물질, 원자력 안전사고 등 심각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특수재난 분야의 경우 안전처 출범 5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특수재난실장 자리가 비어있는 등 완전한 조직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문제로 꼽히고 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후 대책의 하나로 신설하겠다고 밝힌 인사혁신처도 가동 중이다. 공직사회 전반의 적폐 해소와 개혁 추진을 위해 신설된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인사 업무와 윤리·복무·연금 기능뿐만 아니라 공직후보자 추천을 위한 인재 발굴,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기능을 맡게 됐다. 또 이러한 인사혁신처 신설 취지에 맞춰 민관유착이나 전관예우를 방지하기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도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예고한 것처럼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퇴직공무원의 취업제한 기간은 기존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됐고, 사기업에만 한정됐던 취업제한기관 대상은 시장형 공기업과 안전 및 인·허가 관련 공직 유관단체, 사립대학·종합병원·사회복지법인 등 비영리단체로 확대됐다. 또 공직사회의 개방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담화 내용에 따라 2017년까지 5급 공채(행정고시)와 민간 경력채용의 비율이 5:5로 조정될 전망이다.
이밖에 위헌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대형 인명사고를 유발할 경우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측근에게 숨겨둔 재산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나 대상자를 공무원뿐 아니라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들로까지 확대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등도 국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이런 대책들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참사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1달 뒤 유족들을 만난 박 대통령이 “언제든 유가족들을 다시 볼 것”, “(수사와 조사 등이) 진행되는 과정을 유족 여러분과 철저하게 공유해 그 뜻이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뒤 박 대통령은 1년 가까이 유족을 외면했다. 박 대통령이 최근 “세월호 선체 인양 적극 검토” 등을 밝힌 것에 대해 실종자 가족과 유족들이 “1주기가 다가오니 여론무마용으로 그러는 게 아니냐”며 싸늘한 반응을 내놓은 것도 결국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석진환 김외현 기자 soulfat@hani.co.kr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을 찾은 한 추모객이 11일 선착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 고개를 수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진도/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슈세월호 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