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며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맹비난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정치학자들이 본 ‘청, 유승민 공세’
“이번 사태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문제”
“미국서 오바마가 이랬다면 개그 프로 소재 됐을 것”
“이번 사태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문제”
“미국서 오바마가 이랬다면 개그 프로 소재 됐을 것”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는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번 사태를 정치공학으로 분석하는 이유다. 그런데 대통령의 여당 원내대표 불신임을 헌법 질서나 정치 제도 차원에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정치학자들에게 물어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심판을 요구한 것은 정당한 일인가.”
정당하다고 답변한 정치학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에 관여했던 어떤 학자는 “할 말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제고 뭐고 떠나서 이건 대통령이 자기 뜻대로 하려는 것 아니냐”며 “집권당의 원내대표를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집권당을 대통령에 봉사하는 거수기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총재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던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와 달라보이지 않는다”며 “당이 자율성을 가지고 선출한 대표라면 그 대표의 권위를 인정해줘야 하는데 대통령이 너무 많이 나갔다”고 비판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내부 조정으로 처리해야지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이번 사태는 당청간 권력투쟁이 아니라 헌정 질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3권분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헌정질서를 흔들고 있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좀 심한 말로 하면 대통령이 최고의 정쟁 유발자가 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우리는 대통령제 국가인데 내각제적 운영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대통령제의 제1법칙은 여야가 함께 대통령 권력을 견제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재의에 부쳐 가결시킬 수도 있고 부결시킬 수도 있다. 부결되면 원내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대통령이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권력 지분을 가진 여당의 지도자와 국정을 이끄는 대통령의 지위를 혼동하면 안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의원들이 선출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존중해야 하는데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하면 대통령이 또다시 승부사로서 성공을 거둘 수는 있겠으나 국정은 실패하고 여당의 원심력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대통령제의 속성상 의회가 어젠다를 내놓고 국정을 주도하는 것이 옳은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권위주의적 대통령중심제’가 정상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어 있다”며 “박 대통령도 무의식 속에 국회가 대통령의 뜻을 관철시키는 파견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심판을 요구했다면 주말 개그 프로그램에 나왔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총재-원내총무’에서 ‘대표-원내대표’로 정당의 시스템이 바뀐 것은 당과 청와대를 좀 더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국회에 대한 평가는 국민이 하면 되는 것이지 대통령이 나서서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특히 “5선 국회의원 출신의 대통령이 국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폄하하고 국민들에게 심판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평가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겸해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3김 시절이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제왕적 대통령이 아직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채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에 이어 정의화 국회의장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들 수 있다”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위상과 역할이 위협받게 되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매우 위험한 상태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한용 선임기자, 이정애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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