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한 야당의원들의 의사 진행 발언을 들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근혜 정부가 격렬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부 여당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보수언론과 학계·교육계까지 반대하는데도 ‘국정화 드라이브’의 수위를 높이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착에 가까운 의지 때문이라는 게 여권의 공통적인 해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일 “박 대통령께서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에 우려를 표명해왔고, 그것을 바로잡으라는 대책 마련을 지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 추진이 박 대통령 뜻이란 점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는 “100% 대한민국”을 내건 대선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에 대한 열망과 5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동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념 공방’을 벌이는 것이 실익이 없다는 계산도 있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면 절대 당에서 강하게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역시 ‘청와대발 국정화 밀어붙이기’를 마뜩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본인 임기 중에는 국정화 발표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 관료들도 침묵하고 있을 뿐,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달 11일 교육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 연구진 5명이 기습적으로 ‘국정화 반대 선언’을 발표한 것도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박 대통령의 우군을 자처했던 보수 언론들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해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경한 보수 논조를 펴온 <문화일보>도 이날치 사설에서 ‘검증 강화가 정도’라며 거듭 국정화를 반대했다. <조선일보>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는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임기 3년차 막바지에 박 대통령 스스로 제기한 주요 국정의제들이 있는데, 교과서 국정화가 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국론을 쪼개며 추진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정화 강행이 보수 진영의 폭넓은 지지가 아니라 박 대통령의 독주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학계는 이념성향, 전공을 불문하고 국정교과서에 대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다. 지난달 2일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이 교육부에 국정화 반대 의견서를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 각지의 대학교수와 연구진 2396명이 반대 성명에 참여했다.
박 대통령의 ‘국정화 독주’가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과 여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임기 중반에 이념적인 사안을 내세울 경우, 우호적인 지지기반 확충에 부담이 되고 정체성 이슈에 예민한 야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혜정 전정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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