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증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신청서를 접수하고 4주 걸렸습니다. 예상보다 늦어진 것은 마침 출입증 디자인 변경으로 전체 출입증을 새로 만드느라 그랬다네요. ‘출입증이 나왔다’지만 직접 본 것은 며칠 뒤입니다. 기자들의 출입증은 춘추관에 보관합니다. 필요할 때 받아서 사용한 뒤 반납하는 식입니다. 깜박 잊고 반납하지 않으면 전화가 온다네요. 이런 경우 되돌아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군요.
출입증이 있다고 해서 청와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청와대는 당번이 대표로 취재해 공유하는 ‘풀’(Pool) 취재를 합니다. 대통령 경호와 의전 등을 고려한 조처로 이해합니다. 사진기자의 경우 매달 당번 표를 작성해 미리 춘추관장실에 전달하고 그 표에 따라 당번 2명이 그날의 모든 일정을 책임지고 취재합니다.(언론사에 사진을 공급하는 통신사 2개는 별도입니다) 일정이 있는 날, 당번 기자만 청와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드나들 수 있습니다. 물론 매번 철저한 검측을 합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휴대용 금속탐지기로 다시 한 번 몸을 검사합니다. 가방도 엑스레이 검색기로 들여다보고 노트북과 카메라는 전원을 켜서 작동시켜 경호관이 확인합니다. 그 뒤 출입구에 설치된 출입증 인식기에 출입증을 접촉해 신원을 확인하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춘추관뿐입니다.
“카메라를 바닥을 향하게 해 한 장 찍은 뒤 보여주세요.” 경호관의 요구대로 찍은 사진입니다. 효피디
검측을 마친 기자들이 청와대 본관으로 타고 갈 소형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효피디
4일 첫 당번이었습니다. 이날 주요 행사는 한-필리핀 정상회담. 공식 방한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입구에서 맞이한 뒤 ①방명록 작성과 기념촬영→②소규모 회담→③확대 정상회담→④양해각서 체결→⑤공동 언론발표가 2시간 동안 계속되는 빡빡한 일정입니다. 함께 당번이었던 기자는 “야외 의장대 사열을 제외한 모든 청와대 행사를 맛볼 수 있는 일정”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마감이었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청와대 도착이 오후 3시50분이고 공동 언론발표가 오후 6시 예정. 신문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창 지면 제작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2명이 함께 다니다가는 마감에 어려움이 있겠기에 일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제가 ①③을, 다른 기자가 ②④를 취재하고 사이사이 마감한 뒤 ⑤는 함께 보는 ‘퐁당퐁당’ 취재. 저로서는 다행이었습니다. 모든 취재를 했으면 혼이 나가버렸을 겁니다. ‘퐁당퐁당’ 했는데도 중간에 살짝 혼미했으니까요.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하는 뭐 그런 심정? 잠깐이지만 다시 수습기자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와대 행사’는 철저히 사전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돌발상황’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누가 참석하는지 어디에 앉는지 어디로 움직이는지 등 사전에 경호와 의전을 고려해 분 단위로 짜인 대본에 맞춰 흘러갑니다. 대부분 상황을 미리 예상할 수 있으니 대통령의 움직임만 놓치지 않는다면 일단은 오케이.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확대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며 취재진 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마 “저쪽을 보시죠”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효피디
밝은 표정의 문재인 대통령에 비해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행사 내내 거의 웃지 않았습니다. 효피디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한 뒤 타갈로그어로 “마라밍 살라마트 포”(Maraming Salamat Po,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자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비로소 밝게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이마저도 미소 수준입니다만. 효피디
사소한 실수(이것이 결정적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가 있기는 했지만 첫 청와대 취재는 별 탈 없이 마무리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큰 행사가 아니어서 또 한 번 다행이었습니다. 다음 취재 때는 여유가 조금 생기길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늘 별 탈 없기를~.
퇴근을 하려고 밖으로 나오니 필리핀 기자들이 춘추관 앞에 있었습니다. 한쪽에 주저앉아 기사를 쓰는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도 외국에 가면 비슷한 모습이겠구나’ 싶어 슬며시 웃었습니다. 효피디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