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란다”며 강한 톤으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북-미 협상을 기대하며 시간을 보냈던 지난해와 달리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본관에서 밝힌 신년사에서 “나는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에 포함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다시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전쟁 불용, 상호 안전보장, 공동번영이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국제적인 해결이 필요하지만, 남과 북 사이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며 김 위원장 답방에 필수적인 신뢰 회복 방안들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우선 “비무장지대(DMZ)는 생태와 역사를 비롯해 남북 화해와 평화 등 엄청난 가치가 담긴 곳”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등재는 우리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북한의 호응을 바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8천만 겨레의 공동 안전을 위해 접경지역 협력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김 위원장도 같은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노르웨이 오슬로 포럼 연설에서 접경지대 산불, 병충해, 가축 전염병 공동대응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9·19 합의 사항이지만 이행하지 못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위해 “현실적인 방안을 남북이 함께 찾고, 노력을 계속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제1회 동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와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북한의 실력 있는 선수들이 참가하길 기대한다”며 “도쿄 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을 위한 협의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런 제안은 지난 1년을 돌아보니 북-미 관계가 남북관계를 견인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 독자성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도 남북관계에서만큼은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지난 1년간 남과 북 모두 북-미 대화를 앞세웠던 게 사실”이라며 “북-미 대화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해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문 대통령의 제안과 관련해 “북-미 협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계속 남북관계를 한발짝 뒤에 둘 수는 없다. 북-미 협상 지원과 남북관계를 동시적으로 가져가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남북관계를 앞쪽에 둘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김정은 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를 강조했지만 ‘행동’은 유보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김 위원장도 한국의 제안, 남북관계의 중요성과 독자성을 고민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당장 북한이 호응해 올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제재 완화나 한-미 연합 훈련에 관한 언급은 신년사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북한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한-미 훈련과 무기 도입 중단 등 안보와 직결된 문제에 대한 남쪽의 입장일 것”이라며 “그게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제안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성연철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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